김병직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수산학박사
▲ 말뚝망둥어. /사진제공=안정현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새벽녘에는 발끝에 챙겨둔 홑이불에 자연스레 손이 간다. 곧 가을이다. 요즘에는 좀처럼 볼 수 없지만 십 수 년 전만 해도 여름이 물러간 서해 바다 큰 강어귀에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 무언가를 낚는데 여념이 없다. 갯지렁이와 묵직한 추를 매단 낚싯바늘이 갯벌 바닥에 닿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낚싯대 끝이 활처럼 휘더니 제법 큰 물고기가 맥없이 딸려온다. 뭉툭한 머리에 커다란 주둥이, 꼬리가 늘씬하게 빠진 망둥이다.

옛날 문헌을 살펴보면 우리 조상들은 망둥이를 여러 한자로 기록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망어(䰶魚),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에는 문절어(文節魚),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무조어(無祖魚)·대두어(大頭魚)·철목어(凸目魚), 전어지(佃漁志)에는 망동어(望瞳魚)·탄도어(彈塗魚)라 적고 있다. 특히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9권 경기편을 보면 인천도호부의 토산에 망어가 전어(錢魚), 수어(秀魚, 숭어)와 함께 올라 있다. 다른 설명이 없어 '망어'가 80종에 가까운 망둥이 중 어떤 종류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서해의 명물인 전어, 숭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면, 크기도 맛도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양 또한 많았음에 틀림없다. 후보로 떠오르는 망둥이 중 하나가 바로 풀망둑이다. 우리나라 연안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망둥이인 풀망둑은 다 자라면 50cm정도에 이른다. 그 예전 다리 위에 늘어선 낚시꾼들에게 가을 초입의 즐거움을 선사한 주인공이다. 내장을 제거하고 바람 좋은 곳에 걸어 말려주면 그 쫄깃함을 겨우내 즐길 수 있었다.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라는 속담이 있다. 남들이 한다고 해서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덩달아 나서는 것을 일컫는다. 숭어를 따라 덩달아 뛴다는 속담 속 망둥이는 어떤 물고기일까? 어떤 이는 망둥어라 부른다.
1820년 서유구(1764~1845, 조선 후기 문신)가 저술한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를 보면 한자 망동어와 함께 한글로 '망동이'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강과 호수에 사는 비늘이 없는 물고기로, 미꾸라지와 비슷하지만 짧다. 머리가 크고 꼬리가 뾰족하며, 턱 아래에 있는 두 개의 지느러미는 발과 같다. 등쪽은 흑색, 배쪽은 연한 흑색이다. 눈이 크고 돌출되어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고 멀리 바라보려는 사람과 같아 망동이라 하며 탄도어(彈塗魚)와 매우 비슷하다. 탄도는 바다에 살고, 망동은 강과 호수에 산다"고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속담 속 망둥이나 난호어목지의 망동어는 학문적으로 농어목 망둑어과에 속하는 물고기이다. 올해 초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배포한 2018 국가생물종목록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망둥이라 부를 수 있는 물고기는 모두 76종이나 된다. 사실 표준국명에 '망둥이'가 포함된 물고기는 없다.

하지만 '망둥어'라는 이름이 표준국명에 포함된 물고기는 두 종이 있다. 바로 말뚝망둥어와 큰볏말뚝망둥어이다. 바닷물이 물러난 갯벌에서 발처럼 생긴 가슴지느러미를 이용해 기어다니거나, 꼬리자루의 탄력으로 통통 뛰어다니는 물고기들이다. 몸의 모양과 색깔뿐만 아니라 머리 위에 두 눈이 툭 튀어나온 게 영락없는 망동어이다. 서해 갯벌이라면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갯벌은 하루에 두 번 사람들의 발길을 허락한다. 바닷물이 물러간 광활한 서해 갯벌. 크고 작은 다양한 생물들의 삶의 터전이자 동시에 우리에게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번 가을에는 생명의 보고 강화갯벌이라도 들러 바다가 물러난 갯벌을 뛰어다니는 말뚝망둥어를 찾아보자. 운이 좋으면 등지느러미가 큼지막한 큰볏말뚝망둥어도 볼 수 있을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