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화 경기중부취재본부 부국장

 

 

달포가량 지났지만 그칠 줄 모른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불거진 '노(NO) 아베' '노(NO) 재팬'은 갈수록 거세다. 불매운동과 기술독립선언에 이어 생활 속 애국운동 동참으로 이어지고 있다.
안양지역 시민들의 항일(抗日), 극일(克日) 행보도 거침없다. 성숙한 시민과 학생들이 그 중심에 있다. 스스로 자각한 자발적 동행이기에 엄중하게 들려온다. 아베 규탄 안양시민행동의 평화촛불집회라는 문화행사가 열리고,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습니다'라는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학생들은 학생자치회를 중심으로 불매운동 동참을 선언했다.

이같은 외침과 결기, 실천은 무엇일까. 100여 년 전, 일본은 우리 민족을 침탈했다. 그때 상처가 아물지 않고 덧난 건 아닐까. 기자는 한 권의 책을 폈다. 지난 역사를 되짚어 보고 조선총독부 총독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이재범 전 경기대 교수가 쓴 '나의 일본 여행(두李기획, 2018년)'이다. 조선 통감과 총독의 고향을 찾아가서 보고 듣고 느낀 소회를 풀어썼다.
저자는 "이번 여행에서 확인한 것은 우리는 우리고, 일본은 일본이라는 사실"이라며 "잠시라도 두 나라의 평화와 공존을 꿈꾸었던 내 생각이 얼마나 무모하고 천박한 것인가를 깨달았다"고 했다. 국제 평화라는 단어 이면에 자리한 자기 이익 챙기기, 자주 꽃 피면 자주 감자고, 하얀 꽃 피면 하얀 감자라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자연발생적인 현상을 재인식했다고 한다. 기시감일까, 저자의 진단은 요즘 한일 갈등을 예단한 듯하다.

일제의 식민정치를 진두지휘한 한국통감부(1906~1910년) 통감과 조선총독부(1910년 1월~1945년 9월) 총독은 모두 10명이다. 이들은 식민지 통치를 위한 토지조사 사업, 안악사건, 신민회 사건, 민족대표 매수공작, 일본어 상용 강요, 창씨개명 등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사건들을 만들어 냈다. 강제징용·징병, 일본군 성노예 등 잔혹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본은 공식 사죄나 사과는 커녕 과거사마저 부정하고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경제보복으로 응답한 것이다.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침략 원흉으로 안중근 의사에게 포살된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문화재 약탈자 소네 아라스케, 우리 주권을 빼앗고 통감(3대)에서 초대 총독으로 눌러앉은 데라우치 마사타케, 을사늑약 때 한국 대신들을 협박한 하세가와 요시미치, 우리 궁궐 다 부순 해군대신 사이토 마코토, 우리 부모형제 돈 밝히다 쫓겨난 야마나시 한조, 일본육군을 쥐락펴락한 우가키 가즈시게, 창씨개명으로 민족정신까지 말살하려 한 'A급 전범' 미나미 지로, 우리 누나를 위안부로 만든 역시 'A급 전범' 육군대장 고이소 구니아키, 텐노(천황)의 항복방송을 듣고 가족 먼저 피신시키려다 망신당한 아베 노부유키.
이들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통감·총독들이다. 가장 먼저 죽여야 할 칠가살(七可殺 죽여야 할 일곱)의 '0'순위였다.

일본이 식민통치를 절대 반성하지 않는다면, 정한론은 여전히 유효하고 일제 강점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총독들의 만행을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2200년 전 당한 핍박을 기억하기 위한 '하누카' 축제 때 부르는 'Hayo haya', 그 노래의 섬뜩한 가사에 빗대어 읊조려 본다. '우리 유관순 누나 죽인 놈, 누구? 하세가와 요시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