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미워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사람이다.
언젠가 그 순간이 닥쳐 올 것이고
그 순간을 위하여 지금 나는 더더욱 착해지려 노력한다.
나는 버림받은 개의 눈동자를 흉내 내며
슬퍼 보이려고 노력한다.
노력이 중요하다.
기억의 빛이 너를 미움에 눈멀게 할 것이다.

내가 미워했던 한 평론가를 생각해본다.
예정되어 있었을까,
그는 사라졌고,
그의 글도 사라졌고,
그를 기억하는 이들도 사라졌고, 이제
그는 옹색한 미움으로만 내 안에 남아있다.
그렇게 있다는 것은 나의 노력이 모자란 것.
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아 절멸했다.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어디선가 개처럼……

사람들이 울기 시작한다. 울다가, 여전히 울고 있는 사람들을 때린다. 같은 표정으로, 내내 우는 사람들도, 우는 사람들을 때리는 사람들도. 같은 표정으로 마주 앉아 같은 얼굴로 변해가면서 누군가는 때리고 누군가는 여전히 울고 그러다가 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비극과 얕고 단순한 선의와 선의의 폭력들과 결말들.

메시아는 언제 강림해야 할까
기도보다 빠르게.
말보다 빠르게.
비명보다 빠르게.
그러니 이미 늦었는지도.
몇 년 동안이나
네가 있는 배경 속에 내가 있을 수 있을까.
노력이 중요하다.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나를 미워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키운 회양목보다 메시아는 커다랄 것이다.
메시아가 오기 전까지는
너와 나는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울지 않을 것이다.

▶ 우리의 마음 속에 '미움'이 있다. 착한 세상은 '미움'을 버리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에 '미움'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미워했던 그가 사라졌는데도 "옹색한 미움"으로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는 그는. 이성적으로는 미움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미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세상에는 "미움의 제국"이 있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울기 시작해도 "여전히 울고 있는 사람들을 때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우는 사람도 때리는 사람도 "같은 표정으로 마주 앉아 같은 얼굴로 변해가면서" 누군가는 때리고 여전히 누군가는 울고 그러다가 "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우는 사람이 울다가 때리면 때리는 사람이 되고, 때리던 사람도 울기 시작하면 우는 사람이 되는 것. 우는 사람과 때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 "한 사람"이라는 것. /권경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