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법률용어부터 뜯어고쳐야

검찰보존사무규칙 제9조(보존절차) 1항에 나오는 낯선 단어 '압날'(押捺)은 '도장을 찍다'라는 뜻의 '압인'(押印)과 '날인'(捺印)에서 앞글자만 따온 말이다. 단순히 '도장을 찍다'라는 뜻으로 한자로 '오우나츠'라고 발음되는 전형적인 일본식 한자어 조합으로 친일잔재의 법률용어다.

법제처는 2000년 '법률 한글화 사업'을 시작으로 법규에 있는 어려운 한자어나 일본식 표현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헌법에서부터 일본식 한자어 표현을 쓰고 수 많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규칙, 각종 행정용어, 공문서 등에도 일본식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15일 법제처가 지난 2017년 12월 발간한 '알기 쉬운 법령 정비기준'에 따르면 기타(其他), 당해(當該), 계리(計理), 부의(附議) 등은 바꿔야 할 일본식 한자어다.

당해는 '바로 그 사물에 해당한다'는 뜻으로 우리식 표현하면 '해당'이다. 그러나 헌법에서도 당해를 두 차례나 사용하면서 쉽게 바뀌지 않는 법률용어다.

헌법 제27조가 국민의 기본권인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정하면서 쓴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 등이 대표적이다.

법제처의 국가법령정보센터에도 일본식 한자어 '당해'는 무려 658개의 법규에서 쓰는 것으로 검색된다.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쓰이는 '기타'도 대표적인 일본식 한자어 표현이다. 우리말로 '그 밖에', '그 밖의'로 바꿀 수 있지만 헌법에서 25번이나 사용하고 있고 무려 718개 법규에서 사용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규칙으로 들어가면 일본식 용어는 무수히 쓰이고 있다.

지자체의 법규를 검색할 수 있는 자치법규정보시스템에 '당해'를 검색하면 이를 쓰고 있는 1만5841개의 조례와 7699건의 규칙, 4547개의 훈령이 나온다.

'기타'는 2만6959건의 조례에서 사용하고 있고, 규칙 1만442건에도 쓰이고 있다.

일본식 법률용어 사용을 자제하는 운동은 수년 전부터 일부 도내 지자체에서 시작됐으나 관심부족 등으로 확산되지 못했다.

안건을 회의에 부친다는 뜻의 '부의'는 지방의회 의회운영의 기초가 되는 '회의규칙'을 처음 만들 때부터 당연하게 쓰였으나, 그간 꾸준히 용어를 순화해 왔다.

경기도의회의 경우 지난 2007년 10월 회의규칙을 전부 개정해 '부의하다'를 '회의에 부치다', '당해'를 '해당', '선임'을 '임명', '잔임기간'을 '남은 임기' 등으로 바꿨다.

최근들어 일본의 경제침략에 일제 잔재 청산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조례에 남아있는 일본 잔재 행정용어 바꾸기 바람이 불고 있다.

김포시는 지난달 '일본식 한자어 등 용어 정비를 위한 김포시 조례 일괄개정조례'를 만들어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일본식 한자어를 일괄 개정했다.

이번 조례 개정으로 김포시 20개 조례에서 사용돼온 '전대(轉貸, 빌려주다)', '부락(部落, 마을)', '계리(계산하여 정리하다)' 등 24개 단어를 정비했다.
광명시도 일본식 한자어가 포함된 조례·규칙 일괄개정뿐만 아니라 ▲공문서 작성 시 일본식 한자어 표현 순화 ▲일본식 회계용어 개정 등 행정용어 변경도 서두르고 있다.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도 공문서에서 사용하는 일본식 한자어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수년간 수시로 행정과 법규에서 일본식 한자어 표현을 쓰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도 모두 바꾸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용어 순화를 위해 지속적인 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