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지명 습관처럼 사용, 마을회관·도로명 버젓이
▲ 사진 위쪽부터 일산역, 분당선, 발곡역, 대사골 음식점, 안양천 표지판 등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본식 지명 안내판·지하철역·음식점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SNS 발췌

광복을 맞이한 지 74년이 지났지만 경기 지역 곳곳엔 일본이 만든 지명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창지개명을 통해 국내 고유 지명들을 강제로 일본식으로 바꿔놓았다. 도내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지명들이 일제강점기 수난을 온몸으로 겪은 역사의 흔적임에도 단지 '익숙하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일본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15일 한국땅이름학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995년 8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된 전국 37개 지역을 우리 고유지명으로 환원했다. 37개 지역 중 도 관할은 29곳으로 23개 지역이 중앙지명위원회 심의를 통해 고유지명을 되찾았다. 그러나 몇몇 지자체에서는 아직 일제 지명을 사용하고 있다.

의정부 신곡동의 '발곡(鉢谷)'의 본래 '발우수리'이다. 과거 이곳 절에서 승려들이 사용하는 발우를 잘 만든다고 해서 '발이소리' 또는 '발이술리'라고 불리면서 이 같은 지명이 생겼다. 지난 1995년 고유지명으로 변경됐지만 도민들에게 일제 지명이 습관처럼 사용되다 보니 여전히 발곡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 2012년 7월 1일 들어선 수도권 전철인 의정부경전철역의 이름이 '발곡역'으로 지정된 데 이어 인근 초·중·고등학교의 명칭에도 발곡이 포함됐다.

하남 초이동의 '대사(大蛇)골'도 지역 내 커다란 논들이 많다는 이유로 '큰배미골'이라고 불렸다. 이곳 역시 심의를 통해 고유지명으로 되돌려놓았지만 마을회관 이름, 주변 가게 및 음식점 간판 등에 일제 지명을 기재해 사용하고 있다.

또한, 김포 대곶면의 일제 지명 '도룡동(道龍洞)'도 고유지명인 '모정(牟井)'으로 변경됐으나 도로명으로 도룡동사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어 여전히 일제 지명의 흔적이 남아있는 실정이다.

의왕 왕곡동의 백운산 서쪽에서 발원해 안양을 지나는 하천인 '안양천'은 일본이 단순히 안양을 지나 흐른다는 이유로 지금의 이름을 붙였다. 안양천은 본래 갈대가 많아 '갈천', '갈내'라고 불렸다.

특히 성남의 분당(盆唐)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분점리(盆店里)와 당우리(唐隅里)의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고양의 일산(一山)도 애당초 '일뫼' 또는 '한뫼'라고 불렸기 때문에 지명 변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앞서 여러 시군에서는 일제의 잔재의 흔적을 지우고자 지자체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일제 왜곡지명 개선에 나서고 있다.

파주는 지난 2014년 관내 문산읍과 문산리의 한자를 자체적으로 '문산(汶山)'에서 '문산(文山)'으로 고쳤다. 일제강점기때 바뀐 문산(汶山)의 문(汶)자는 '더럽다', '불결하다'라는 뜻이 있는 데다 물을 뜻하는 삼수변이 있어 1990년대 후반 3차례 큰 수해를 겪은 주민들이 '글월 문(文)'자의 사용을 희망했다. 시는 지명위원회를 열어 문산의 한자 명칭을 변경하게 됐다.

용인은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와 원삼면 좌항리에 걸쳐 있는 고개 이름을 변경했다. 기존에 '좌전고개'라고 불렸지만 1995년 일제식 지명을 정비할 때 '좌찬고개'로 표기해 일제를 청산했다. 좌찬고개는 조선조의 관직명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광명은 지난 8일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대응의 일환으로 일본식 지명 변경해 일제 잔재를 청산할 계획임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많은 지자체에서 일본이 바꿔 놓은 땅이름을 되돌려 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본이 만든 지명을 그대로 두거나 이를 본 따 상호로 사용하는 등의 문제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은 "광복 74주년이 넘도록 일본인이 남겨놓은 땅이름이 그대로 남아 여전히 지도에 표기되고 도민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대한민국 국민이 적극적으로 나서 쉬운 것부터 하나씩 (우리나라식 지명으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채은 기자 kc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