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건전한 시민사회에 거는 기대

연일 보도되는 일본의 경제보복 관련 뉴스를 접하면서 필자는 오래전 일본유학시절 겪었던 좋지 않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처음 일본에 가서 살 집을 구할 때였다. 어렵사리 한 집을 찾았더니 집주인이 외국인에게는 집을 빌려주고 싶지 않다고 단번에 거절을 했다.

몇 번 그런 거절을 당하고 나서야 겨우 한 곳을 구할 수 있었다. 집 뿐만이 아니었다. 학교에 입학할 때도 외국인이기 때문에 일본인의 보증이 필요했다. 한번은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탔는데 우리가 하는 한국말을 들은 일본인이 노골적으로 한국인을 비하하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수년전에는 연구프로젝트 일로 자민당 국회의원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자민당 내에서는 꽤 높은 지위의 국회의원이었고 한일 의원교류활동도 한다는 그의 말에는 한국을 뒤떨어진 나라, 일본은 그런 뒤떨어진 한국을 도와주는 나라라는 인식이 역력했다. 필자는 그런 우월감을 우월감으로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조금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차별의식을 드러내는 그가 정치지도자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재작년 현장연구차 방문한 일본의 복지시설에서는 조선총독부에 관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살았었다는 할머니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 할머니는 자신이 아는 유일한 한국어가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던 남자를 부르던 말인 "총각"이라고 했다. 이 할머니의 기억 속에 있는 한국인은 자신들과 동등한 인격체도, 그들이 침략하고 지배했던 그 땅의 주인도 아닌, 그저 자기 집안의 하인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행복한 추억인 양 이야기하던 그 할머니에게서 제국주의 식민지배자로 남의 나라를 짓밟았던 과거사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일본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학시절, 학교에서 만난 어떤 일본여성으로부터 자신들의 공부
모임에 와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저 한국어를 공부하는 모임인 줄 알고 가보니 이들은 몇 년 동안 한국 여성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싸워오고 있었다.

한국의 여성노동자들이 받는 차별과 부당한 대우에 공감해 한국까지 와서 한국여성들과 함께 집회에 참가하고 일본 내에서는 여성노동문제에 대한 공부도 하고 있었다. 그 때 보았다.

일본의 건전한 시민사회의 모습을.

아베정권의 왜곡된 역사인식에서 출발한 경제보복에 대해 최근 일본의 시민사회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보도를 들었다.

일본의 우경화는 한일관계 뿐만 아니라 일본 자국을 위해서도 결코 이익이 되지 않음은 자명한 일이다.

일본의 양심있는 시민사회가 더 크게 한 목소리로 아베 정권의 어리석음을 규탄하고 그러한 운동이 우리의 촛불민주혁명처럼 번질 수는 없을까?

필요하다면 우리 시민사회가 일본의 양식있는 시민사회와 연대하는 방법도 모색해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오래 전 한국 여성노동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던 일본여성들을 기억하며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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