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의 상징, '역사 보전'이라는 궤변 멈춰야
▲ 친일잔재 청산 요구를 받고 있는 안양시 안양1동 구 서이면사무소의 모습. /안양시 공식 블로그

 

 


일제강점기 수탈을 상징했던 건물과 친일파를 추모하는 각종 조형물, 시비(詩碑), 친일파의 생가 등은 여전히 경기지역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광복 74년을 맞았지만 이들 추앙하는 조형물 등이 청산되지 않고 있다.
최근들어 일본의 경제침략에 분노한 시민들이 일제가 남긴 건축물과 조형물에 대해 철거를 요구하는 등 친일 청산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철거 요구 받는 친일 수탈 관청

14일 경기도 등에 따르면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에 있는 서이면사무소는 인근 상인들과 시민단체로부터 철거·이전요구를 받고 있다.

1917년 만들어진 서이면사무소 건물은 지난 1949년까지 면사무소로 사용되다 면사무소가 신축이전하면서 개인에게 매각돼 병원과 음식점 등으로 사용됐다. 그러다 지난 2001년 경기도 문화재자료 100호로 등록됐고, 시는 29억2700만원을 들여 건물을 사들여 2003년 12월 일반에 공개했다.

문제는 복원작업을 펼치며 일제를 찬양하는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건물 마룻대에는 '조선을 합하여 병풍을 삼았다. 새로 관청을 서이면에 지음에 마침 천장절(일왕의 생일)을 만나 들보를 올린다'고 일제침략을 정당화하고 찬양하는 내용의 상량문이 적혀있다.

이에 안양1번가상인번영회와 서이면사무소퇴출운동본부 등의 철거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안양시도 철거하기 위해 지난 2016년 도 문화재심의위원회에 도문화재 지정 취소를 안건으로 상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 문화재심의위원회는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라는 이유로 안건을 부결했다.

서이면사무소 퇴출운동을 벌이고 있는 서이면사무소 퇴출운동본부와 안양1번가상가번영회는 "서이면사무소는 안양인들의 민족 정신을 훼손하고 안양인의 정체성을 말살하는 친일 역사물"이라며 "지금이라도 안양인의 정신과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기 위해 문화재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친일파 추모비와 생가는 여전히 남아있다.

화성시 남양읍에 있는 홍난파 생가는 소실된 집을 1986년 고증을 통해 복원까지 한 곳이다. 경기도와 화성시의 관광지 안내에도 빠지지 않는다. 인근의 도로명주소는 '홍난파길'이다.

고양시 행주산성 내에는 왜군과 맞서 싸운 권율 장군의 위엄을 기리는 충정사가 있다. 충정사에 걸려 있는 권율 장군의 영정은 근대화가 월전 장우성이 그렸다. 그런데 월전 장우성은 일제강점기부터 화가로 활동하면서 일제가 군국주의를 찬양하기 위해 개최한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고, 상을 받은 후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국민예술 건설에 매진할 것을 맹세한 친일 인물이다.

이러한 친일 행적으로 장우성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친일 인사로 등재됐다. 현재 경기도의회 의원모임인 독도사랑 국토 사랑회는 친일 작가가 그린 영정 교체를 촉구하고 있다.
이천시 관고동에 있는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은 월전 장우성을 기념하는 미술관이다. 미술관 내 문학동산에는 역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이인직과 서정주를 기리는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부천시는 지난 9일 부천시의회 앞에 있는 친일 음악가 홍난파가 작곡한 고향의 봄이 적힌 시비를 철거했다. 또 시내에 있는 모든 시비 70개를 조사해 서정주, 노천명, 주요한 등 친일 문학인이나 음악가의 시, 노래가 적힌 6개 시비 철거를 마무리했다.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자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을 근대문화 공간과 동사무소 등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구 부국원 건물은 일제에 의한 농업 수탈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1923년 일본인에 의해 설립된 ㈜부국원은 종묘·농기구 회사로 일제가 몰락하기 전까지 호황을 누렸다. 일제 몰락 이후 부국원 건물은 1952~56년까지 수원법원과 검찰청사로 사용되는 등 최근까지 수원교육청, 공화당 경기도당 당사, 병원 건물 등으로 활용됐다. 그러다 지난 2015년 수원시가 매입해 근대역사문화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옛 대부면사무소 건물은 지난 2004년 도 문화재자료 127호로 등록됐다. 1913년 민간에게 받아 1933년 면사무소로 개축한 건물은 한옥 양식의 건물로 역사탐방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안성시 안성1동 주민센터는 일제강점기인 1928년 지어진 건물이다. 건축 후 1966년까지 군청 건물로 쓰이다 읍사무소를 거쳐 현재의 주민센터로 쓰이고 있다. 건물은 지난 2004년 일제강점기 잔재를 없애자는 요구를 정면으로 받았지만 '보전할 가치가 있다'는 주장에 밀려 유지됐고, 지난해 국가 등록문화재로 등재됐다.

도 관계자는 "친일행적이 드러난 인사와 관련된 것들은 청산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건축물의 경우 그 상태 그대로가 사실이다. 문화재심의위원회 회의에서도 일제시대 역사를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관점에서 문화재 지정 및 취소 등을 심의하고 있다"며 "논란이나 민원이 있다고 해서 문화재 지정을 취소한다면 한 두 곳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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