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도를 오르내리던 8월8일

 

 

 

군포시에서는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51개 단체가 모여 경제침략 아베 규탄과 평화를 위한 군포시민행동 선언식을 하며 시민들에게 아베 정권규탄 동참을 알렸다.

지난 6일 급하게 몇몇 단체가 회의를 하고 이틀 만에 많은 단체가 모여 한목소리를 내는 건 그만큼 아베 정권의 뻔뻔함에 우리 국민들이 분노했다는 걸 보여준다.

나는 군포에 있는 시민단체 상근활동가로, 군포시민행동의 집행위원을 맡았다. 일본강제노역 배상 판결 보복으로 시작된 수출규제를 시작으로 백색국가 지정 등을 보면 일본 아베 정권의 치졸함이 극치를 달하는 것 같다.

'헉' 소리 나는 더위에도 나라 걱정으로 모인 어르신들을 보며 4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1937년생이신 나의 아버지는 6살에 아버지의 아버지(나의 할아버지)를 일본의 강제노역으로 떠나보냈다.

아버지는 3살, 1살인 동생들과 농사일에 익숙지 않은 할머니를 대신해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됐다. 아버지의 학력은 초등학교 중퇴다. 할아버지가 안 계신 집안 형편은 어려웠고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남의 집 머슴살이를 했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 울었다는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단다. 해방되어도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으셨고 그 어디에도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향간에는 할아버지가 탄광에서 돌아가셨다고도 하고 일본이 할아버지를 배에 태워 바다에 묻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혹시나 북측에 있을까 이산가족 상봉 방송을 밤새워 보시던 아버지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삼대독자인 할아버지가 첫 아들을 낳아 너무도 기뻐 춤을 췄다는, 귀한 나의 아버지는 일본에 의해 슬프고도 힘든 삶을 살았다.

아마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지금 아베 정권의 행태에 분개했을 것이다. 특히 아베에게 사죄하는 정신 나간 친일파, 강제노역과 일본군 성노예를 부정하는 친일파 등 일본 아베 정권 보다 더 무서운 적들이 같은 땅에 살고 있음을 보면서 울분을 토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역사 왜곡을 일삼는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것은 아버지의 피가 내게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굴욕의 외교를 해왔던 지난 날 정권에서의 상실감보다 지금 당당히 아베 정권 규탄과 자발적 일본제품 불매를 외치는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