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흥 논설위원

세금의 주인은 납세자다. 당연히 납세자들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예산의 씀씀이를 계획하고 쓰는 것은 공무원이다. 그 승인과 결산은 정치인들의 몫이다. 정작 주인인 납세자들은 끼어들 틈이 없다. 곳곳에서 예산 낭비와 이기주의가 횡행하고, 세금을 빼먹는 범죄가 벌어지기도 한다. 며칠 전 불거진 김재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의 예산 민원 논란이 단적인 사례다. 이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자고 만든 것이 주민참여예산이다. 예산 흐름의 전 과정에 주민을 참여시키자는 것이다. 주민들의 감시와 견제가 있으면 공정성과 투명성이 어느 정도는 확보되지 않겠느냐는 기대에서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곳에 직접 예산을 투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인과 공무원이 하는 일이 늘 그렇듯, '말대로' 될 리가 없다. 인천이 특히 그렇다. 박남춘 시장은 주민참여예산을 전임 시장 때보다 20배가량 늘렸다. 오는 2022년에는 500억원으로 확대된다. 그런데 첫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인천시는 주민참여예산 운영 방안을 논의하는 첫 토론회 때 특정 단체와 손을 잡았다. 이들과 독점적으로 자문단회의를 구성하고 향후 계획의 틀을 잡았다. 다른 단체들은 모두 배제됐고, 기존의 공식조직도 무용지물이 됐다. 이를 통해 전국 최초로 예산운영권을 가진 중간지원조직이 탄생했다.
특정 단체는 이를 겨냥해 사전에 하부조직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예정된 수순처럼 인천시는 특정단체에게 중간지원조직을 넘겨줬다. 생긴 지 1년도 되지 않은 신생단체가 수십억 원의 예산운영권을 거머쥐게 된 배경이다. '자치와 공동체'라는 이름의 이 신생단체는 시 계획형 '참여단체'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주민참여예산 중 자신들이 운영권을 직접 행사하는 분야다. 이들은 심사위원의 신분을 조작하고 신청단체 구성까지 제멋대로 뒤바꿨다. 심사가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자기들의 우호 조직을 대거 선정하고, 어떤 신청자는 뚜렷한 이유 없이 탈락시켰다. 정치인들도 곳곳에 개입했다. 진보정당의 전·현직 시당위원장이 노골적으로 이 단체의 활동에 끼어들었다. 이 단체 이사들 대부분과 참여단체 구성원 상당수도 진보정당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 탓에 "주민참여예산을 내년 총선에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 7월26일 시민정책자문단 회의에서 '주민참여예산 점검과 개선'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말 뿐이다. 아직까지 공식적인 문건 한장 내놓지 않고 있다. 박 시장의 치적으로 내세우려던 주민참여예산이, 오히려 인천시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