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한일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8·15 광복절을 앞두고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의 '평화경제'를 바라보는 깊이 있는 의견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8·15광복절을 앞두고 이런 영화를 보는 것이 조금 우울하지만, 우리 스스로 깨어나라는 죽비(竹)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의 <주전장(主戰場)>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보고나서 다른 분들에게 관람을 권하기도 했다.
위안부 소녀상에서 시작해 한·일 간 역사 갈등 문제에 대해 어느 일방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시각을 담아 각자 자기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에 담긴 인터뷰와 영상 중에는 우리의 상식을 의심케 만드는 충격적인 내용들이 많다. 그런 탓인지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데도 관객들은 무거운 침묵 속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일본 자민당 스키타 미오(杉田水脈) 의원은 "정직한 일본인은 학교에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배운다. 반면 속임수가 판치는 나라 한국, 중국의 학생들은 '속지 말라'고 배우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일국의 정치인이란 사람이 이웃 국가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를 뿐만 아니라 심각하게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카세 히데아키(加瀬英明)란 사람은 "중국은 조만간 붕괴할 것이고 그러면 한국은 일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세상에서 가장 친일적인 훌륭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한국은 정말 귀여운 나라예요.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정말 귀엽지 않나요?"라고 말한다.
카세 히데아키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친가와 외가 모두 이른바 '금수저' 집안 출신으로, 후쿠자와 유키치가 설립한 게이오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예일, 콜럼비아 대학을 졸업했다. 귀국한 뒤로 일본은 세계의 지도국이며 일본인은 세계의 지도자로서 신에게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극우단체인 '일본회의'의 대표의원이자 도쿄본부 회장,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대표, <추한 한국인>이란 혐한 서적을 타인 명의로 출판했다가 발각돼 파문이 커지면서 한국 입국금지 명단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군사정권 시절 청와대를 드나들며 대일외교의 파이프라인을 자처한 대표적 지한파 인사임을 자임했었다.
그가 펴낸 <추한 한국인>이란 책은 익명의 한국인 저자가 서술하는 일종의 자기비판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일제의 한국통치를 정당화하는 내용이 실려 있으며 한국인에게는 식인 습관이 있다는 등 비상식적이고 왜곡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일본회의의 '국회의원 간담회' 가맹의원은 중·참의원 합해 281명(2015년)으로 이들 중 집권 자민당 의원이 약 90%를 차지한다. 아베 일본 총리를 비롯 내각의 주요 장관들도 포함돼 있다. 그런 단체의 대표란 자가 보여주는 한국 인식의 수준이 이 정도란 것만 보아도 아베가 이끄는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과거 조선 왕조가 끝자락에 있을 때 신흥세력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를 격퇴하고 기고만장 나댔지만, 그 행동은 졸렬하기 그지없었다. 110년 전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가 <동양평화론>에서 "용과 호랑이의 위세로 뱀과 고양이처럼 행동한다"라고 일갈했던 까닭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환란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내버리고 한국병탄과 침략전쟁으로 일관한 일본의 처신을 비판한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일본의 소인배 같은 행동은 변함이 없다고 하겠다. 지금 일본은 1592~1598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략했던 7년 전쟁 임진왜란처럼 기습적으로 한국에 경제전쟁을 선포했지만,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지금이야말로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생각으로 국민이 깨어있으면 아베를 누를 수 있고, 도리어 극일(克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 눈 멀어 국론이 분열되고 강대국의 눈치에 초점을 맞추는 일부 지식인들의 패배의식과 만행을 경계해야 한다.
아시아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나라들의 공통점은 전후 토지개혁에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의 여부가 결정적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토지개혁 과정에서 중국, 대만, 북한은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국민당과 공산당 일당독재에 의해 시행했고, 호치민의 북베트남은 한 차례 실패를 거울 삼아 다시 실시해 성공을 거뒀다. 일본은 연합군 사령부(GHQ)의 맥아더(1880~1964) 사령관에 의해 두 차례 토지개혁이 실시됐다. 일본의 토지개혁과 평화헌법은 '맥아더 헌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진행된 민주개혁이었다. 반면 한국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이후 여야와 대지주들까지 합의하여 범민족적·민주적으로 시행했다. 이는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대한민국이 사실상 유일한 사례다.
한국은 광복 이후 분단과 6·25전쟁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됐지만, 1960년대 이후 50년 동안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받은 돈이 중요하게 쓰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국민의 피땀어린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성취였다. 우리는 1970년대 오일 쇼크,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 개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 성공,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등 다양한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왔고, 우리 앞에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결과 오늘날 구매력 기준 개인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하는 저력을 세계에 보여줬다.
물론 이번에 문제가 된 소재산업 등에서 대일의존, 무역적자 등 압축성장의 결과로 정경유착 등의 어려움 등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우리는 4·19민주학생혁명 이래 끊임없는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5·18광주시민항쟁, 6·10민주항쟁, 촛불혁명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깨어있는 시민 스스로의 힘으로 오늘날의 번영과 민주주의를 성취했다.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아시아 인스티튜트 원장은 "대한민국은 인구 2000만 명 이상 되는 나라 가운데 식민지 경영 등 제국주의 정책이나 유산 없이 선진국이 된 최초의 국가"라고 말했다. 이 말은 우리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식민지로 수탈하지 않고 선진적인 민주국가를 달성한 유일한 국가라는 뜻이다.
일본은 전후 미국의 우산 아래 비를 피하며 살았기 때문에 정열과 향기를 잃었다. 일본의 시민들은 한국의 역동적인 한류에서 촛불혁명에 이르는 진취적인 시민사회를 부러워한다. 이것은 고난과 위기 속에서 싹튼 우리만의 정신이요, 행동이요, 매력이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행동하는 문화와 정신을 창조해낸 것이다. 일본이 경제강국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겉으로 화려하고 안으로는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국민총소득(GNI) 5조1598억 달러로 세계 3위를 달성했지만, 2012년(6조3690억 달러)의 80%에 그쳤다. 따져보면 1995년 수준이다. 이것은 24년 후퇴한 것이다. 일본의 국가부채비율은 국내총생산(GNP)의 238%로 압도적 세계 1위이며 경제성장률은 0.7%에 그쳤다. 하지만 한국은 국가부채비율이 40%가 넘지 않으며 과거 IMF 외환위기 당시 유동성이 높은 단기부채였던 것과 달리 장기부채에 속한다.
지금 일본이 우리에게 가하는 경제보복은 작게는 한국 정부를 길들이기 위한 것이지만, 크게 보면 장차 남북교류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을 통일 한반도의 잠재된 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비록 일본은 우리에게 경제보복을 가하지만 우리는 아시아 여러 국가들, 세계와 더불어 나아가는 평화경제를 꿈꾼다. 우리는 아베가 꿈꾸는 전쟁 가능한 일본의 미래, 제국주의적 침략을 거부한다. 일본이 혐한을 외치지만 우리는 이웃 국가로서 일본과 일본시민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평화를 요구하는 일본 시민사회와 연대하며 '노(No) 아베'를 외칠 뿐 '노(No) 일본'이 아니다. 촛불을 통해 더욱 성숙한 시민들이 한 마음 한 목소리로 세계를 향해 외치고 있다. 이러한 모든 동력이 국민 스스로의 자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세계는 더욱 주목할 것이다.

/새얼문화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