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식 경기중부취재본부 부국장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1970~1980년대 젊은이들에게는 '사상의 은사'로, 군사정권하에서는 '의식화의 원흉'으로 평가받아온 리영희(1929~2010) 전 한양대 교수가 2005년 3월 발간한 인생회고록 <대화>에서 고백한 내용이다.

<대화>는 이같은 믿음을 확인하고 실천했던 한 지식인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6·25전쟁, 4·19, 5·16, 광주민주화운동 등 역사의 고비는 그의 삶과 괴리된 적이 없는데 거기 함몰되지 않은 비판적 시각이 잘 드러난다. 수십권의 저서를 통해 한국 진보사상을 이끌어온 그는 분단이후 질곡의 현대사 속에서 아홉 번 연행되고 다섯 차례 구치소에 갔다. 세 차례 재판을 받아 1012일간 옥고를 치렀다. 또 언론계에서, 대학에서 각각 두 차례씩 쫓겨났다. 그가 최근 군포지역에서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내년 서거 10주기를 앞두고 군포시와 시민사회단체까지 나서 그를 추모하고 삶과 철학을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삶이 군포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포시는 2023년까지 추진할 '군포문화관광 5개년 종합계획(안)'에 그가 거주했던 수리 한양아파트 주변을 '리영희 길'로 조성하는 사업을 포함시켰다. 옛 수리파출소에 서재를 재현하고, 민주주의와 평화 등과 관련된 강의·체험 행사도 검토 대상이다. 군포문화재단은 '리영희 학교(가칭)'를 개설해 그의 삶과 사상을 통해 올바른 시민의식을 함께 배우는 학습과정을 검토 중이다. 재단은 앞서 '우리 시대의 스승-리영희 읽기'를 진행했다. 문학평론가 임헌영 교수가 리영희의 생애와 사상 및 저서에 대해 강연했다. 김홍백 인문학자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시민들과 강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왜 리영희인가'보다 '왜 군포에서 리영희 선생을 찾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이유는 그의 철학과 사상이 군포의 정체성과 시민정신에 맞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가 2004년 12월 평생 모은 장서를 군포시에 기증한 일은 지금도 생생하다. 한때 관심을 두고 공부했던 자동차정비 관련 서적부터 일반 사회과학, 언론정보학 등 모두 400여권에 이른다. 친분·교류가 있는 저자·학계 인사들이 선물로 준 책들로 누구와 교분을 맺었고 어떤 책을 읽으며 사색해 왔는지 엿볼 수 있다. 그는 당시 "집필을 위해 각종 서적을 읽고 연구했지만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만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놓게 됐다"는 말을 남겼다. 타계하기까지 16년간 거주하며 '군포의 마을인'으로서 삶도 빼놓을 수 없다. 1994년 서울에서 이주할 당시 산본 소각장 건설 문제가 이슈가 됐는데, 환경관련 시민단체에 자문역을 하는 등 지역 현안에 관심을 갖고 함께 고민해 왔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일부 시민에게는 다소 생소하다. 진보 또는 관심층이 아니라면 거리감도 있다. 희망과 과제가 동시에 존재하는 대목이다. 저널리스트로서, 학자로서, 지역사회 관점에서 등 다방면의 평가와 재해석 작업이 필요하다. 결국 평가와 의견이 엇갈릴 수 있으나 그의 시대정신과 사상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이념은 물론 정치색을 배제하고, 상업주의를 경계해 누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숙제로 남는다.

/경기중부취재본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