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녀상이다!
김종길 미술평론가

1919년 3월 1일 한반도에서는 "대한 독립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땅을 뒤흔들고 하늘을 들썩이게 한 날들이 이어졌다. 독립운동은 조선 민족의 울력이어서 기어이 해방의 순간을 차지하고야 말았다. 1919년 그 첫날의 함성으로부터 100년이 됐다. 얼마나 뜨거운 100년인가! 그러나 일본에게 그 세월은 망각과 부정과 악몽의 시간들이었다.

멜랑꼴리의 자폐적 그늘로 가득한 전범세대의 후예들은 그 시간들을 견디지 못하고 치졸한 방식으로 보복을 감행하고 있다. 경제보복은 단지 신호탄에 불과할지 모른다.

2015년 1월 도쿄 후루토 갤러리에서 열렸던 '표현의 부자유' 전의 후속으로 지난 8월 1일 개막한 '표현의 부자유, 그 후'전이 결국 문을 닫았다.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을 문제 삼아 전시를 중단한 것이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트리엔날레에 대한 보조금 교부 중지를 시사했고, 실행위원장인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는 전시 개막 사흘 만에 전시 중단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평화의 소녀상'은 조각가 김운성, 김서경 부부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의뢰로 제작해 2011년 12월 14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일본 대사관 앞에 처음 설치했다.

한 조각상이 미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적 언어를 획득한 사례는 전무후무할 것이다. 이 작품은 이후, 부산 의정부 고양 수원 세종 광주 등 국내의 여러 도시들에 세워졌고, 심지어는 유럽과 미국, 캐나다에도 세워졌다. 작품이 세워진 곳에서 이 작품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쟁점화 하는 도화선이 됐다.

일본이 우려하는 것도 그 지점이었다. 한 조각상의 의미가 미학적 상징을 넘어 역사의 문제, 전쟁의 문제, 인간의 문제로 확산되면서 전범 국가 일본의 치부를 파고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점은 트리엔날레 전시 중단의 파장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한 일본이 퇴행적 전체주의의 정치 행태를 민낯으로 보여주고 있다는데 있다.

기획전을 준비한 실행위원들은 트리엔날레 전시 중단 조처를 중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나고야 지방법윈에 제출할 계획이라 한다.

전시에 참여한 나카가키 가쓰히사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고, 일본의 펜클럽은 "창작과 감상 사이에 의사를 소통하는 공간이 없으면 사회의 추진력인 자유의 기풍도 위축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한 이 문제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내가 소녀상'이라며 소녀상을 재현한 퍼포먼스가 잇따르고 있다. 전시 하나를 막았는데, 소녀상 퍼포먼스로 세계가 들썩이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독립을 넘어 세계의 해방을 향한 연대가 일어나고 있다. 일본은 이제 역사 앞에 사죄하고 보복조치를 철회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