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가 돌아왔다.

'참이슬' 아니면 '처음처럼' 일색이던 소주시장에 오랜만에 '신상'이 등장한 것이다.

진로(眞露) 로고도, 두꺼비 상표도 그대로다.

초록색 일색인 소주병도 푸른색으로 갈아입었다.

라벨 귀퉁이의 'Jinro is back'이 눈길을 끈다.

중장년 이상 주당들에게 진로는 청춘의 한 자취같은 것이다.

레트로(복고풍) 바람인가.

▶진로소주는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났다. 6·25 전쟁 후 서울 영등포에 공장을 새로 지은 월남(越南) 기업이다. 1965년 희석식 소주로 전환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지방 소주들이 지역 제한에 묶여 있을 때 진로는 유일한 전국주였다. 술꾼들은 진로만 찾았다. 1970~1980년대 지방의 식당 등에서 진로소주를 마시려면 주인에게 잘보여야 했다. 주류 도매 시장에서도 진로만은 현금 결제였다. 현금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쏟아진다고 했다. 진로소주 운송 기사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몇 짝을 몰래 빼내주는 뒷돈벌이를 할 정도였다.

▶풍부한 자금력으로 진로는 그룹 확장에 나선다. 식품, 화장품, 건설, 물류, 백화점, 금융 등등. YS정부 시절에는 진로의 고향인 평남 용강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기도 했다. 카스맥주까지 출시, 소주·양주·맥주의 3대 주류시장을 석권했다. 이 시기 진로 신입사원의 훈련도 화제를 모았다. 6~7층 쯤 되던 서울 서초동 진로사옥의 옥상까지 걸어 올라가는 과제였다. 그런데 계단 하나 하나마다 진로소주 한 잔씩을 마셔야 했다. 소주를 이겨내야 소주를 팔 수 있다는 건 가.

▶전성기는 끝이 있게 마련이다. 소주시장 진출이 꿈이던 OB맥주(두산주류)는 1990년대 초 강원도 소주를 인수한다. 강원도에서 군 생활했던 사람들에 익숙한 경월소주다. 맛과 품질을 높인 '그린소주'를 내놓자 곧 시장에 안착했다. 그러나 두 소주 모두 IMF 위기를 전후해 M&A 시장의 매물로 나온다. 진로소주는 하이트맥주에, 그린소주는 두산그룹을 거쳐 롯데로 넘어간다. 이 소주들이 지금의 '참이슬', '처음처럼'의 전신이다.

▶'NO JAPAN' 운동의 불똥이 소주시장에까지 튀었다고 한다. '처음처럼'이 일본 투자기업 술이 아니냐는 의혹에서다. 인기 연예인이 깃발을 들면서 "나도 소주 바꿨어요"가 인증사진과 함께 쏟아진다. "이 참에 소폭용 맥주도 순수 국산으로 바꿉니다"도 보인다. '처음처럼' 공장에 일하는 강릉 시민들만 애꿎은 속앓이를 한다고 한다. 몰아치기식 불매운동은 일본만 좋아라 할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할 것이다.

/정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