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꽃 이파리 뒷장이 붉어졌어요
아침마다 당신이 지나가는 언덕길 낡은 집이 보여요

나는 도화꽃 뒷장에 숨어 당신의 거친 발자국 소리를 들어요
영문도 모르는 밤나무들 훅훅 아랫도리가 뜨거워졌어요
한발로도 서있을 수가 없었어요
사막의 모래처럼 뜨거운 입김으로 나를 흔들었어요

꽃들의 입술과 바람과 잃어버린 삼월의 발뒤꿈치와
조심스레 당신의 내력을 담았어요

붉게 꽃잎으로 포개지던 밤이 도홧빛으로 익어가고
꿈속인 듯 성근 그늘 아래 낡은 집들이
언덕길에서 마른 꽃으로 피는 것을 보았어요

당신의 목덜미에 꽃잎이 떨어지는 정오
또 한 마리 붉은 뱀이 도화꽃으로 물이 들어요

/김연순 

▶'도화꽃 피는 마을'을 읽다보면 '도원결의(桃園結義),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의(義)로움, 유비, 관우, 장비'등과 같은 거친 사내들과 포연에 휩싸인 전장의 풍경과 백성들의 절규와 어제 내가 지나온 골목길의 한 순간들이 생각난다.

왜? 그럴까. 왜? 하필 나관중은 그토록 아름다운 도원(桃園)을 배경으로 상실과 절망의 시대를 그려내려 했을까? 영웅들이 피의 냄새를 풍기며 지켜낸 땅에는 변함없이 오늘도 아침이 오고 다시 저녁은 간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결의 뒤에는 결핍이 있다는 듯이, 그 결핍과 부재로부터 아름다움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소중하다는 듯이… 김연순 시인의 시 '도화꽃 피는 마을'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는 그 아름다움을 품고 살아온 아릿한 시간의 상처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상적인 세계의 결핍에 대한 아픈 노래였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이 '꽃들의 입술과 바람과 잃어버린 삼월의 발뒤꿈치와/조심스레 당신의 내력을 담'은 '언덕길'에 피는 도화꽃마저 없다면 오늘 우리들의 삶은 또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세상은 하 수상하고 오늘 아침, 이 아름다운 시 한편을 앞에 두고 나는 내가 사는 이 땅이 다시는 전쟁의 피비린내가 나지 않는 아름다운 도원(桃園)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이 글을 쓴다.

/주병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