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도면과 음악의 악보 그리고 공연 기획서는 서로 맥락을 같이하는 점이 많다. 어떤 것이나 새롭게 만든다는 것은 쉽지는 않겠지만 특히 작곡을 한다든 , 새로운 건물을 건축하는 것 그리고 공연을 기획하는 일은 그 어려움이 여타의 다른 일들과는 조금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완성에 있어서 확신을 갖기가 어렵고 이전의 유사한 과정이 그리 많지 않다. 최종 단계에 다다를 때도 갖은 애를 다 써야 최종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된다. 나는 공연과 문화 기관에 종사한 지 거의 30년이 된다. 그동안 좋은 무대를 기다리는 이들을 위한 공연장을 잘 건립해 보고 싶은 꿈을 간직해 왔다.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공연장의 수를 모두 합치면 약 1000여개 정도다. 이 중에서 잘 지어져서 좋은 공연장이라고 평가되는 공연장의 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채 1%도 못되는 결과가 나오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공연장의 건립자와 운영자가 서로 협력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축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건립에 대한 계획 수립과 시공을 하고, 완공이 임박해서야 운영진이 꾸려지는 이유도 있다. 공연장을 유지 관리하는 일도 대체로 소수의 인원만 배정된다. 공연장이 어떤 용도로 쓰이고 무슨 작품을 어떻게 무대에 올릴 것이며, 누구를 관객으로 맞을 것인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건립되고 있다. 당연히 운영 효율은 떨어지게 마련이고 생명력도 길지 못하게 된다. 과다한 건립비와 관리비가 발생하지만 비용을 감당하는 방안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구체적인 계획도 수립되지 못한다. 이렇게 발생하는 공연장 운영의 낭비와 손실은 공공재원으로 보전하게 되는데, 그 손실을 측정할 기준도 없고 얼마의 재원이 앞으로 필요한 지 정도를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공연장을 잘 건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연장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설정하고 시장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마케팅 분석을 토대로 고객의 성과 구매력을 면밀하게 조사하고 작품 구성 방향을 정해야 한다. 500석, 1000석 이렇게 단순히 객석의 숫자로 공연장의 위상을 정하기보다 공연 작품의 성격에 따라 관객에게 올바로 전달하기 좋은 최적의 상태에 따르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지역의 문화 소비와 구매력 조사, 연구는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공연장이 사회 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여야 한다. 관객들이 작품을 보다 깊이 있게 감상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되어야 한다. 공연장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주도면밀한 시장 분석과 연구 없이 운영에 성공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반대로 이러한 과정을 철저하게 실천한 사례로 LG아트센터를 들 수 있다. 공연장은 대부분 국가 또는 공공부분에서 건립한다. 따라서 공연장 건립을 주도하는 정부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바로 자치단체장이다. 시장, 군수, 구청장 등이다. 자치단체장들이 독단적인 판단을 버리고 전문가의 의견을 더 청취하여 반영되도록 조력하는 입장이어야 하겠다. 그릇된 판단으로 공명심에 사로잡혀 허울만 좋은 큰 공연장 건립을 추진하다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어 실패한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심지어 건립비가 부족한 나머지 민간 재원으로 공연장을 건립하고 그 부채를 후대에게 물려주는 방식(BTL, Build Transfer Lease)으로 공연장을 건립한 사례도 있다. 부평, 경주, 천안, 안동, 익산의 공연장 건립 사례들이다. 건립에 대한 공적은 당시의 자치단체장이 누리고 원금과 이자는 후대가 부담하는 그릇된 방식이다. 원금과 이자의 규모는 부채 없이 건립할 비용 대비 약 200% 정도로 추산한다. 이들 지역은 기형적으로 건립한 공연장의 부채와 원금을 충당해야 하는 짐 때문에 지역의 바람직한 문화 활성화를 도모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경기도 부천, 화성, 평택에 대규모 공연장 건립이 추진된다. 건립 전에 앞으로 운영할 인력과 조직을 제대로 갖추고,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을 함께 추진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도 보다 철저하게 수립되어야 한다. 1980년대와 2000년도에 건립한 공연장들이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우를 이제 극복해야 할 때가 됐다.

/김흥수 서울대 예술과학센터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