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종 수원2049시민연구소 소장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 분권은 보충성의 원리에서 출발한다. 기초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초지방정부에게 권한과 책임을 주고, 기초지방정부가 못하는 일은 다음 단계 광역지방정부가 맡도록 해야 한다. 광역지방정부도 수행할 수 없는 외교나 국방 등의 업무는 당연히 국가가 담당하게 된다.
보충성의 원리는 작년 정부가 주도한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안에서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이 분권논의의 출발이자 반드시 엄격하게 지켜나가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이러한 보충성의 원리는 복지 분야에서 가장 시급하다. 현장마다 다른 복지서비스의 수요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제 각각으로 흩어져 있어 복지 분야는 현장이 어느 분야보다 중요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장의 요구에 대응하며 정책을 수립, 추진하려면 복지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단위에 있는 정부가 권한과 책임을 가져야한다. 복지 분권이 시급한 첫 번째 이유이다.

복지 분야 예산은 국가든 어느 지방정부든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금액도 다른 분야를 월등히 앞서고 있다. 올해 정부예산 470조원 중에서 보건복지노동분야 예산은 161조원으로 34%를 차지한다. 경기도와 인천시 또한 다르지 않아 복지 분야 예산이 30%선을 이미 훌쩍 넘어섰다.
수원시 복지 분야 예산은 매년 증가하여 올해 39.7%, 약 40%대까지 증가했다. 2008년 19.1%이던 복지 분야 예산이 2010년 24.1%, 2013년 33.1%, 2017년에는 38.2%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많은 예산이니 만큼 현장에 가까운 기초지방정부가 복지 분야 예산을 주도적으로 계획,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복지 분권이 필요한 두 번째 이유이다.

수원시 복지 분야 예산이 40%를 차지하고, 그 규모가 약 9000억원 정도이지만 대부분 예산은 국가와 광역지방정부인 경기도의 복지 사업에 꿰맞추어 지출해야만 한다. 즉 9000억원 중 80~90%의 예산은 국가 차원에서 기획되고 설계된 복지 사업이나 경기도가 만든 복지 사업에 지출해야만 한다.

기초지방정부가 현장의 요구를 수용하여 자율적으로 예산을 수립하여 실행할 수 있는 예산이 10%대로 제한되어 있다. 소위 매칭사업비로 대부분의 복지 예산을 지출하다보니 현장에 맞는 맞춤형 복지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하다. 복지 분권이 시민의 삶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는 길인 세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지 분권은 현장에 맞는 사업을 발굴하고 실행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현장의 변화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중·장기적 복지 전략과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 예산 집행권만을 가지고 있는 기초지방정부가 좋은 복지 전략과 중장기 계획을 세울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시대에 언제까지 국가나 광역지방정부가 기초지방정부의 복지 계획을 일률적 기준과 정책 방향에 따라 세워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세운 계획 또한 시민에게 복지 사업의 효용성을 주지 못할 것이다.

기초지방정부마다 권한과 책임을 갖고 중장기 복지 전략과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처음에는 어설프고 미숙할 수는 있어도 한 두 번의 경험을 축적하고 책임성을 높여나가야 한다. 기초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지출할 수 있는 복지 재정을 대폭 확대하고 복지 관련 여러 기준과 범위, 시기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 기초지방정부가 복지 예산을 지출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그 사업의 방식과 대상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복지 분권이 이루어져야 기초지방정부가 제대로 된 중장기 복지 전략과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된다. 복지 분권이 이뤄져야 하는 네 번째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복지 분야 사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복지 분권이 필요하다. 어느 분야보다 많은 복지 법인 관련 승인과 인·허가 관련 사무, 복지 관련 지원 기관이나 센터의 설립과 운영 관련 사무, 각종 수당의 지급 기준과 범위 설정의 권한 등 기초지방정부가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복지 분야 업무 권한을 조속히 이양하는 복지 분권이 이뤄져야 한다. 현장을 중심에 놓고, 복지 수요자인 시민의 삶을 최우선하는 복지 행정을 구현하려한다면 복지 분권부터 서둘러 실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