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희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반도체 소재 3품목 수출규제와 화이트 리스트 제외 문제로 한·일 양국의 조치와 맞대응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 강화와 강제징용 문제는 별개라고 주장하지만 한·일 간에 소재 수출규제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차는 매우 크다. 많은 일본인이 소재 수출규제를 안전보장 이슈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일본이 경제적으로 보복을 가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문제는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기술패권 경쟁의 측면과도 얽혀 있어 사태가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일본은 미래의 한국 반도체 산업을 겨냥하여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실행에 옮기려고 한다. 40여년 전 미국의 일본에 대한 반도체 제재로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무너진 사건들을 떠올릴 때 모골이 송연해진다. 글로벌 공급 체인에 단절을 초래하는 일대 사건인 만큼 체계적인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금 국내외를 막론하고 일본 우익의 망언성 발언이 활개를 치고 있다. 극우세력은 일본 감추기로 일관하는 한국에 대해 본때를 보이는 조치라고 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칭송한다. 일본 우익의 논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과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한일 관계의 많은 이슈에서 일맥상통한다는 점에 있다.

산케이신문이나 주간지, 인터넷 등을 통해 유포되는 우익의 주장은 일본 정부의 입장 전개에 있어 첨병 효과를 톡톡히 발휘한다. 일본 국내의 여론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국제기구나 세계의 주요 언론매체, 미국의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한 국제 여론전에서 공감대를 넓혀가기 위해서라도 일본 정부 입장의 길을 터가는 우익의 억지 주장과 조롱에 대해 냉철한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의 수출통제 제도에 대한 일본 우익의 비판과 조롱을 살펴보자. 156건에 이르는 부정 수출 적발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관리 제도가 효과적이고 투명하게 운용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부정 수출이 발생한 것인데 적발되었기 때문에 제도가 효과적이고 투명하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일축한다. 이는 마치 한국이 살인범을 많이 체포하기 때문에 안전한 국가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까지 한다. 일본을 통한 대북 수출 등 위반 사례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비난은 명백한 증거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우익의 궤변이다.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결국은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고 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딴지를 멈추지 않는다. '경고한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한국이 자신이 처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일본 경제를 걱정해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일본은 수출 관리를 강화해도 곤란할 게 없지만 한국은 처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언동이 시도 때도 없이 땡깡부리는 어린애와 다를 바 없다고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글로벌 산업 생태계가 파괴되고 회복력을 잃으면 수출 규제가 일본 경제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은 자명한 이치다.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대한 평가절하도 줄을 잇는다. 불매운동은 '반일 애국 증후군'의 일종이며 인터넷상에서 분출되는 과시적 행동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 의류, 맥주 등 소비재가 아니라 일본산 부품이 잔뜩 들어간 삼성 스마트폰을 불매해야 한다고 조롱하기도 한다. 불매운동 자체가 목표는 될 수 없겠지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적 '반일 애국 증후군'으로 환언되지 않는 부분이 크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해야 할 것이다.

우익의 논리는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 고자질 외교를 일삼는 나라, 끝없이 사죄를 요구하는 지긋지긋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확산시켜 60%를 넘는 일본 국민이 수출규제조치에 찬성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파의 논리가 한줌도 안 되는 세력의 발작성 망언이 멈추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도체 공동체와 같은 한·일 공생 네트워크를 통한 동아시아 번영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한·미·일의 굳건한 공조를 통한 동북아 평화 네트워크의 균열을 가속화시킬 우려 또한 배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익의 논리와 조롱이 일본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한일 간의 건전한 관계를 훼손시키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대응이 요구된다. 당연히 피해자 중심주의, 국민적 수용 가능성이라는 가치가 중시되어야 하겠지만 외교적 사안인 만큼 상대국 내부의 수용 가능성까지도 염두에 둔 현실주의적인 접근이 요구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