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흥 논설위원


강화 서북단의 교동도는 북한 땅이 지척이다. '엎어지면 코 닿는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바닷물이 빠지면 갯벌을 걸어 왕래할 수 있는 정도란다. 행정구역도 황해도와 경기도를 거쳐 지금은 인천에 편입됐다.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많은 황해도 주민들이 이곳으로 몸을 피했다. 이웃 동네에 잠시 숨었다가, 금세 집으로 돌아갈 요량이었다. 하지만 휴전이 된 뒤,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눈앞에 고향 집이 훤히 보이는데도 부모형제를 영영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이곳에도 희망이 싹텄다. 한걸음이라도 북쪽으로 더 다가가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지난 2005년 강화·교동도에서 '한강 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가 시작됐다. 강화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어로한계선을 넘었다가 되돌아오는 코스다.
인천과 경기, 서울지역 시민단체가 모여 4년 간 진행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이마저도 중단됐다.
이명박 정부는 "수로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더 이상 행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배를 타지 못하게 되자, 이번에는 종이배를 만들어 띄웠다. 통일의 꿈이 멀어지는 속에서 종이배를 접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다행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지난해부터 배 띄우기 사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종이배를 접은 지 10년 만의 일이다.
지난해 11월부터는 남북 공동으로 한강과 임진강 하구의 공동 수로 조사 사업을 벌였다. 안전을 핑계로 항해를 금지했던 교동도 북쪽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지난 27일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조직위원회'는 여섯 번째 행사를 펼쳤다. 인천지역에서도 많은 시민단체들이 동참했다. 외포리에서 배를 탄 시민들은 월선리에서 기념행사를 가진 뒤 교동대교 앞까지 항해했다. 비록 짧고 아쉬운 뱃길이었지만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지난해 영종도와 신도를 잇는 연도교 건설이 승인됐다. 앞으로 강화와 교동도를 지나 해주로 연결되는 '평화도로'의 시발점이다. 교동도에 개성공단 수준의 '남북평화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라고 한다.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의 꿈이 교동도와 인천에서 먼저 꽃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