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감각기관은 통한다 … 기의 실체 다룬 '신기통'


선생은 당대의 학문을 허무학(虛無學)·성실학(誠實學)·췌마학(摩學)·낭유학(學)이라 일소에 부치고 자신의 학문을 운화학(運化學:기학)이라 하였다. 허무학은 귀신, 허무를 이론 근거로 삼는 유해하거나 무익한 학문으로 방술잡학, 외도이단, 선과 불교, 서양종교가 여기에 속한다. 성실학은 유학으로 허무학의 귀신잡설을 물리치기는 하였으나 기에 대한 증험이 없기 때문에 통일된 기준이 흔들리고 주관적 억측으로 빠져든다고 하였다. 다음이 췌마학이다. '췌마'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려 상상하고 억측한다는 의미이다. 췌마학으로는 음양학, 성리학 등이 있다. 선생은 당시에 성리학을 췌마학으로 내치고 "있거나 없거나 상관할 것 없는 것(有無不關者)"이라하였으니 대단히 독기 서린 말이다. 다음이 낭유학(學)이다. 낭유란 잡초를 뜻하는데 낭유학은 방술학, 외도학(불교, 도교, 천주교 등)을 가리킨다. 선생에게 이런 학문들은 모두 헛된 학문이었다.

그렇다면 선생이 주장하는 자신의 학문은 무엇인가. 선생은 '기(氣)'를 요체로 하는 운화학을 만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기학(氣學)'이다. 이 기학을 학술적, 논리적으로 가장 먼저 체계화한 글이 <기측체의(氣測體義)>이다. <기측체의>는 선생 나이 34세, 1836년에 기(氣)의 용(用)에 대해 논한 <추측록> 6권과 기(氣)의 체(體)를 논한 <신기통> 3권을 묶어 만든 책이다. 이 책은 후일 중국 인화당에서 활자로 간행되었으니 그 명성을 짐작할 만하다. <기측체의> 서문은 이렇다.

대개 천지와 인간 만물의 생겨남은 모두 기(氣)의 조화에 말미암는다. 이러한 기에 대해서는 후세로 오며 여러 일을 겪으며 경험으로 점점 기가 밝아졌다. 그러므로 이치를 궁구하는 자들이 표준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기가 먼저냐? 이가 먼저냐?는) 분란을 종식시키게 되었다. 이로부터 연구하는 사람이 진량(津梁, 나루와 다리로 연구하는 사람이 중심을 가지게 된 것을 비유한 것)이 생겨 거의 어그러지고 잘못되는 일이 없게 되었다. 기의 체(體)를 논하여 <신기통>을 짓고 기의 용(用)을 밝혀 <추측록>을 지었는데, 이 두 글은 서로 겉과 속이 된다. 이 기는 사람이 날마다 쓰고 행함에 품성을 기르고 발동하는 것이므로 비록 이 기를 버리고자 해도 버릴 수 없다.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도 이 기를 통달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으니, 기를 논한 글을 여기에 대략 그 단서로 열어 놓았다. 두 책을 합하여 편찬하였는데, <추측록>이 6권이고 <신기통>이 3권으로 총 9권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기측체의>라 하였다.

<기측체의>를 짓는 선생의 서문이다. 선생은 모든 만물을 만드는 것도 기요, 우리의 일상을 주재하는 것도 기요,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도 기라 한다. 선생이 말하는 '기'는 전통적 주자학에서 기가 아니다. 즉 공기와 같은 것을 말한다. 선생은 그 근거 예를 여섯 가지나 들었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를 보자면 '앞 동쪽 창을 휙 닫으면 서쪽 창이 저절로 열리는 것이 바로 기가 있다는 증명'이라 한다. 선생은 이 기의 무한한 쓰임의 공덕을 '신(神)'이라 하였다.

선생은 또 이 기가 체와 용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체는 무엇이고 용은 무엇인가? '체'를 논한 것이 <신기통>이고 '용'을 밝힌 것이 <추측록>이다. 선생은 위 글 뒤에 "즉 기는 실리의 근본이요 추측은 지식을 확충하는 요체이다. 이 기에 연유하지 아니하면 궁구하는 것이 모두 허망하고 괴탄하다. 추측에 말미암지 않으면 안다는 게 모두 근거 없고 증험할 수 없는 말일 뿐이다(則氣爲實理之本 推測爲擴知之要 不緣於是氣 則所究皆虛妄怪誕之理 不由於推測)"라 하였다.

선생이 당시의 학문체계를 허무학·성실학·췌마학·낭유학이라 하고 이들 학문을 배척하는 이유는 '기가 없어 허망하고 괴탄하며 추측이 없어 근거 없고 증험할 수 없다'에서 찾은 것이다.

이제 기의 체를 논한 <신기통>부터 본다. 선생은 "하늘이 낸 사람의 형체는 모든 쓰임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이 신기를 통하는 기계(器械 귀ㆍ눈 등 신체의 기관)이다. 눈은 빛깔을 보여주는 거울이고, 귀는 소리를 듣는 대롱이고, 코는 냄새를 맡는 통이고, 입은 내뱉고 거둬들이는 문이고, 손은 잡는 도구이고, 발은 움직이는 바퀴이다. 통틀어 한 몸에 실려 있는 것이요, 신기(神氣)가 이것들을 맡아 처리한다"라고 <신기통> 서문을 시작한다. 즉 선생이 말하는 '신기통'은 모든 감각기관이 서로 통하는 것이다. 선생은 신기통을 체통(體通:몸), 목통(目通;눈), 이통(耳通:귀), 비통(鼻通:코), 구통(口通:입), 생통(生通:생산 양육), 수통(手通:손), 족통(足通:발), 촉통(觸通;피부),주통(周通:두루함), 변통(變通;변함)으로 나누었다. 이 중, 변통만을 보겠다.

공명·부귀에는 저절로 하늘과 사람의 통하는 바가 있다. 만약 변통을 통하여 얻었다면 그것은 진정한 공명·부귀가 아니다. 변통을 기다리지 않았는데 남들이 나에게 돌려주는 것이 진정한 공명이요, 부귀이다. 대개 공명을 이루는 것은 대소를 막론하고 그 이룬 것이 나에게 있는 것이지만, 그 공명을 공명으로 여겨 주는 것은 오로지 남에게 달려 있다. … 그러므로 부귀공명은 천명을 순수히 받아들이고 인사에 호응하여 구차하게 변통하는 것을 일삼지 말아야 한다. 일신의 공명부귀를 공명부귀로 여기지 말고, 공론의 공명부귀로써 진정한 공명부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신기통>이 이렇듯 기의 실체를 다루었다면 <추측록>은 기의 작용을 다룬 책이다. <추측록>은 다음회에 다루겠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