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실장

요즘 페북 여론전의 선봉은 아무래도 청와대를 떠난 조국 전 민정수석이다. 28일 조 전 수석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은 사안임을 강조하면서 야당과 일부 언론은 한·일 중 어느 입장에 동의하는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양 극단만 생각하면 친일, 반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본의 주권침해를 용인할 대한민국 국민은 결코 없을 것이다.
12척의 배를 띄운 이순신과 동학혁명 '죽창가'가 인용되는 현실에서 한일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우리로서는 무엇보다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체질 강화가 급선무이다. 한일갈등의 해법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유독 정치권은 편 가르기에 앞장서고 있다. 내 편, 네 편이다. 이분법적 사고다. 정치인들이 내뱉는 자기주장들이 정치적 수사로 보이니 선동정치의 일부일 뿐이다.
단정적 몰입은 인지적 왜곡, 사고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양단 결정' 의식은 일상생활의 다이어트에서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체중 감량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이를 '완전한 실패'로 받아들여서 더 이상 체중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라는 고정된 잣대에서 실패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강할수록 체중을 다시 늘리게 된다는 이치다. 실패를 극복하려는 인내력이 낮게 작용한 결과다. 심리학자 번(Byrne) 등의 설명이다.
중간지대가 사라지고 극단이 넘쳐나는 사회다. 과체중과 같은 우둔한 현실이다. 극단이 중간을 수렴할 수 없는 구조다. 두 극단 사이를 연결하는 연속선은 간 데 없고, 흑백으로 양극화된 현상이 두드러지는 현실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 '좋은 것 아니면 싫은 것' 등 범주가 뚜렷한 시대다. '올 오아 낫씽'(all-or-nothing), '모 아니면 도'가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의 이분법은 편 가르기 패권주의의 아성이다. 이 세상에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는가. 친구가 아니라면 모두가 적, 정답이 아니면 오답이라는 극단성으로는 민주적 사고를 키우기 어렵다. 세상을 보는 눈이 흑과 백으로 오직 나누어진다면 그 많은 회색지대는 실종된다. 완벽주의가 초래한 자기 패배적 사고가 위험 수위로 오르고 목숨을 내놓는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 불확실성과 애매모호함을 견뎌낼 인내도 드물게 된다. 결국 불만족과 불평, 불안으로 이어진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이분법적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 성숙한 사회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