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민주주의의 출발은 세금이었다. 1215년 영국의 존 왕이 귀족들의 강압에 서명한 마그나카르타(대헌장)가 그것이다. '일반 평의회(의회)의 승인 없이 군역대납금이나 공과금을 부과하지 못한다'고 정한 제12조가 핵심이었다. 이른바 '의회 승인 없는 과세 없다'는 민주주의 정신이다. ▶1978년 12월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졌다. 유신체제 1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이어서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총선 압승이 필요했다. 의석 수는 민주공화당이 제1야당 신민당에 앞섰다. 그러나 득표율에서는 민주공화당(31.7%)이 신민당(32.8%)에 뒤지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한해 전 도입된 부가가치세에 대한 조세저항 정서를 신민당이 잘 파고들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었다. 민주공화당 18년 아성도 세금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에도 세금이 한몫했다는 논평이 있었다. '거위털' 논란과 담배세 인상 등이다. '증세없는 복지'를 위해 근로자들의 연말정산 공제 폭을 대폭 축소하려 들었다. 청와대 경제수석의 한마디가 모닥불 위에 기름을 부었다.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털 하나를 뽑는 격이다." 당장 "털 뽑힌 거위의 심정을 아는가" "근로자의 유리지갑만 노리는가" 등의 반발이 터져나왔다. 2014년에는 담뱃값을 80%나 올렸다. 담뱃세 인상이었다. 당시 40%가 넘던 흡연인구들은 겉으로는 "해도 너무 한다"고 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두고 보자"고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금은 소리 소문 없이 민심을 떠나게 하는 무서운 것이다. ▶세금을 올리는 것과 세금으로 주던 혜택을 빼앗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포천시가 재정난을 걱정해 장수수당을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한다. 80세 이상에서 85세 이상으로 지급기준을 올리는 내용이다. 당장 "노인들이 뿔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선거때는 허리 숙여 뭐 해주겠다고 약속하더니 이젠 노인들을 버리는 거냐." 세금으로 주는 혜택도 한번 시작하면 다시 뺏어오기는 어려운 것이다. ▶인천e음카드는 지방정부 시책으로는 파격적 흥행을 거뒀다. 반면 이 캐시백 충전이 재정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아직 인천시는 가능한 한 이대로 간다고 한다. e음카드 캐시백은 일단 세금낭비는 아니다. 거둔 세금을, 적지만 시민들에 제대로 돌려주기 때문이다. 경기도 어느 군에서는 주차 1면 당 3000만원의 예산이 드는 공영주차장을 짓겠다고 했다가 '금 주차장' 논란을 빚었다지 않은가. 세금을 올리든, 혜택을 도로 거둬들이든, 신중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