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하던 공무원이 놀라더라 … 이렇게 깨끗하냐고
▲ 일반국민이 받을 수 있는 사실상 최고 훈장인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조상범 법무부 법사랑위원 인천지역연합회장은 남다른 지역사랑으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지난 19일 조상범 법무부 법사랑위원 인천지역연합회장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뒤 손녀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훈장 수훈식은 인원제한을 받는다. 조 회장은 "해외에 살고 있는 22개월된 손녀가 대한민국과 할아버지를 잊지 말라는 의미로 함께했다"고 말했다. /조상범 회장 제공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 공무원이나 문화·예술·체육·산업·과학·기술계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 국민이 받을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훈장인 국민훈장은 국민 복지 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된다. 국민적 추앙을 받는 사회원로에게 수여하는 무궁화장에 이어 모란장은 2등급에 해당된다. 조상범 법무부 법사랑위원 인천지역연합회 회장이 지난 19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인천에서 다섯 손가락, 전국적으로도 채 몇 백 명밖에 받지 못한 귀한 훈장이다. 8년간 법사랑위원 인천지역연합회 회장으로서 청소년 범죄예방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및 실행, 법질서 바로세우기를 위한 실질적이고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등 인천에 대한 남다른 애향심을 발휘한 공을 인정 받은 것이다. 

우연한 계기로 봉사의 기회가 찾아왔다. 도서지역 선착장 공사를 위해 인천앞바다 섬마을을 누비던 조상범 회장은 여름 휴가철 해변·해수욕장에서 청소년들의 탈선행위에 마음이 쓰였다. 1946년 섬마을에서 태어나 섬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그는 한 때의 실수로 전과자로 낙인이 찍혀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지금은 인천이 된 경기도 옹진군 시도리가 그의 고향이다. "지금처럼 시설이 잘 갖춰졌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름이면 바다로 뛰어드는게 청소년들의 습성아니겠느냐? 방학 때 들뜬 마음에, 젊은 시절 객기로, 전과자가 되고 불안한 미래를 살게 되는게 안타까웠다. 도서지역 공사를 하면서 알게된 지인들도 선뜻 도와 청소년 선도에 나섰던 것이 시작이었다." 1999년 범죄예방협의회 옹진군협의회는 이렇게 탄생했다.

초대 회장을 맡은 뒤 2011년 범방 인천협의회 회장에 올랐다. 2014년 범방이 법사랑위원으로 바뀌면서 임기 8년의 회장직을 수행중이다. 조 회장은 "아무래도 법무부가 주관하는 봉사단체이다 보니 엄격한 범죄경력심사 등이 전제가 된다"며 "개인의 절제된 삶도 중요하지만 건설업 등 법인기업을 운영하는 회원들은 '운'도 좋아야 한다"고 말했다.

운? 조 회장은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단순 '운'만 있었을까? 건설업은 기본적으로 쌍벌죄를 택하고 있다. 굴지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설사에 종사했던 전직 대통령의 화려한 전과기록을 전국민이 알고 있지 않은가? 그는 "훈장과 관련해 공적조사를 했던 행정자치부 고위 공무원이 놀랍다고 하더라, 세금체납이나 음주운전을 물론 벌금 이상의 금고형 전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이해할 만하더라도 건설업을 하면서 법인 처벌이나 재해 1번 없이 어떻게 회사를 운영했냐고 되물어 보더라"고 덧붙였다.

타 회사 대표들은 보통 몇 개씩은 훈장처럼 갖게 되는 전과기록이 없는 인천 굴지의 건설업 회사 회장. 지금은 자식들에게, 조카들에게, 손자에게 자랑하는 얘기가 됐지만 여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인천앞바다 시도라는 작은 섬에 7남매가 우애있게 살았다. 선친은 나라를 위해 보람있는 삶을 살라고 자식들을 가르쳤다. 장남이 공직의 길에 올랐다. 다섯째인 조 회장도 첫 사회생활을 공직에서 시작했다. 이렇게 7남매중 6남매가 공직의 길을 걸었다.

인천이 경기도 소속이었던 시절, 하루는 경기도지사가 "여기 6남매가 경기도를 먹여 살리는거야, 경기도가 6남매를 먹여 살리는거야"라는 농담을 했을 정도란다. 큰 형님은 경기도 기획관리실장을 맡을 정도로 잘 나가던 공직자였다. 자신은 형에게 누가 될까 고향인 옹진군에 틀어 박혀 있었다. 명절이면 7남매와 그 식솔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금처럼 공직자가 선망받던 시절도 아니었고, 한눈팔지 않고 공직에 전념하면 끼니는 거르지 않더라도 고기 구경하기는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조 회장은 "18년간 공무원으로 살았는데, 명절에 가족과 함께 돼지갈비 먹기도 쉽지 않았다. 조카들은 커가고, 누가 하나는 자기 사업을 하면서 집안을 건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만 채우면 공무원연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큰 형님께 보고하고 바로 뛰쳐 나왔다"고 말했다.

형님은 부천시장 등 도시개발이 한창이던 곳으로 다녔지만 단 한 번도 형님이 있던 곳은 삽 한자루 내밀지 않았다. 그러다 형님이 고향발전에 나서겠다며 민선 옹진군수 선거에 출마했고 당선됐다.

선거 기간 누구보다 열심이 뛰었던 조 회장은 형님 당선 이후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인 인성개발 본사를 강원 고성군으로 옮긴다. 서쪽 최접경에서 동쪽 최접경으로, 생면부지의 강원도에, 몇 년 가야 규모있는 공사 한 건 찾아보기 힘든 고성군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그 사이 인천지역에서는 송도국제도시 개발사업이 한창이었다.

인천건설 전성시대, 그는 강원도에 본사를 둔 인천건설인이었다. "형님은 3선을 하고 옹진군수 퇴임식날 '나 때문에 동생이 고생이 많았다,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시더라. 자서전에도 그 마음을 전해주셨고. 섭섭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 그래도 그 말씀 해주시니까, 그리고 그렇게 살았으니까 어디 가서 욕 안 먹고 후배들이 잘 따라주고 해서 이런 훈장도 받게 됐으니까. 형님이 늘 지역을 위해 국가를 위해 헌신하셨던 모습을 봐왔으니 동생으로서 존경할 수밖에 없지."

오늘날 조 회장을 있게 한 2명의 멘토로 그는 띠동갑 큰형님 조건호 전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과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을 꼽았다. 2010년 인천을 사랑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50여명의 지역 지도층이 뜻을 모아 결성한 인천사랑회가 중심이 돼 본격적인 지역사랑 운동을 펴게 된데에는 회장을 맡은 그가 지용택 이사장의 조언을 깊이 새겼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승무원도, 승객도 아니어서 의료보험이나 공제조합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아르바이트생 2명의 유가족에 성금을 전달하고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했던 일이나, 중국어선 나포중 순직한 고 이청호 경사 추모비 건립 및 자녀 장학금 지원도 조 회장이 앞장섰다.

연평도 포격이 있었던 2010년에는 뭍으로 피난나온 연평도민을 위해 인천시새마을회가 중심이 돼 단 기간내에 41억원이라는 성금이 모아졌다. 인천시새마을회 회장과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회장을 맡으며 지역사랑을 실천하던 그에게 2014인천아시안게임은 숙명과 같은 국가적 행사였다. 조 회장은 "2014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대통령이 아시아드주경기장을 방문했다. 북한선수를 비롯해 아시아 각국의 선수단과 응원단이 인천을 찾는데, 인천경찰 사기를 올려달라, 인천경찰청장급이 낮으니 다른 도시처럼 치안정감으로 올려줘서 사기를 올려달라고 부탁드렸지. 재정문제가 심각한데, 주경기장에 대한 국비지원을 해달라고 요청드렸고. 그만큼 절박했던 인천시민들의 염원을 시민의 대표로 대통령께 전달했고, 잘 정리돼 보람도 컸다"고 말했다.

재정위기에 직면했던 인천의 암울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보수성향, 진보성향 시민사회단체 '후배'들과 단시간내 200만명 시민서명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조 회장은 현재 명예 인천경찰관이다.  홍보 경찰관은 있어도 명예 경찰관은 그가 유일하다.

그는 "강화 외포리 선착장에서 시민을 구하다 순직한 고 정옥성 경위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흉상을 제작해 기증했다. 묵묵히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경찰과 해경을 위해 지역 선배로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소리없이 봉사했던 것"이라며 "새얼문화재단이 30년 넘게 새얼아침대화를 열고 있는 것처럼, 이념과 정치적 성향을 떠나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지역현안 해결을 위해 나섰던 경험은 지역발전을 위해 소중한 경험이 됐다.

당시 함께 했던 후배들은 지금도 정기적으로 만나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마음을 터 놓고 걔기하는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조상범 회장은 "법사랑 인천협의회 400여 회원들, 특히 20여 부회장들, 김우현 인천지검 검사장을 비롯한 관계기관 관계자들이 투철한 봉사정신을 갖고 열성적으로 활동을 벌인 결과 인천이 지난해 전국 평가에서 최우수 협의회로 선정될 수 있었다. 내가 대표로 훈장을 받았을 뿐"이라며 "기부도 중요하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쓰는 봉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지역 후배들이 어렵지만 보람있는 일을 이어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칭우 기자 ching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