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호 인천대 경제학 교수

우리나라의 '돈'은 주로 지방에서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으로 역류하고 있다. 정작 돈이 필요한 지방의 자금수요에는 아랑곳 않고 더 많은 투·융자 수익을 위해 서울 언저리를 거쳐 국제 자본시장으로 흘러가버리는 무정한 흐름이지 않을 수 없다. 수도권에 위치한 인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인천 사람들이 예금한, 즉 인천의 돈일지라도 그것은 인천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금융자유화니 글로벌화니 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가 강화되면서 우리나라 지역경제의 지반이 침하되고 있는 것에는 아주 분명한 이유가 있다. 금융이 수도권으로 몰려버리는 기형적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 일반은행의 60%, 상호금융은행의 60.5%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 때문에 비수도권 지방의 기업과 가계의 금융 접근성은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2005년 이후 수도권에 대한 여신금액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반면에 비수도권 지역의 그것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수도권 중에서도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 대한 여신 집중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한 지역 내에서 조성된 자금이 그 지역에 재투자되는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인 예대율은 서울과 경기도에서만 크게 증가하여 인천을 비롯한 나머지 지역의 수치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예금으로 모여진 돈이 그 지역의 자금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쓰이지 않고 되레 그 지역 밖으로 유출되면서 서울과 경기도를 제외한 지역의 경제가 피폐화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돈의 왜곡된 흐름을 시정하지 않는 한 국내 전체 지역경제의 발전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미국의 '지역재투자법(Community Reinvestment Act)'은 한 지역의 돈을 그 지역에서 돌게 하는 모범적인 정책 사례다. 왜냐하면 이 법은 특정 지역의 금융기관에 예금으로 모인 돈이 반드시 기업이나 가계와 같은 그 지역 예금자들의 자금수요에 적극 대응하는 방향으로 재투자될 것을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은 대형 상업은행들이 영업 지역의 저소득·저신용등급자와 영세 상공인 그리고 대출을 위한 담보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의 자금수요에 맞춰 적극적으로 대출, 투자, 또 여타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법적 책임 조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상업은행은 미국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기 때문에 상업은행들이 지역 주체들의 금융수요를 내몰라라 하는 일은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제1금융권 상업은행들이 신용력이 약한 해당 지역의 개인과 중소영세업자들의 자금수요에 보조를 맞춰주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을 대출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의 생활과 경영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고, 심지어는 지역에 크게 공헌해왔던 기업들마저 금융제약으로 인해 폐업하게 되면서 우리 지역경제의 지반이 급속히 침하되고 있지 않은가. 심각한 상황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인천은 어떠한가. 인천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의 자금수요 충족률은 서울과 경기도에 비해 매우 낮다. 인천 기업들의 자금수요와 인천 상업 은행들의 자금공급 간의 괴리는 날로 커지기만 하고 있다. 부산은행과 같은 이렇다 할 지역은행도 없는 인천에서 우리 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이 겪는 불편과 비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근 지역화폐 'e음카드'로 인천 시민들의 소득이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안에서 소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책이 시도되고 있다. 이는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소득뿐만 아니다. 인천의 은행에 모인 예금 역시 지역 밖으로 빠져버리면서 지역경제의 동력이 크게 상실되어 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인천 시민들의 예금이 다른 지역에 투·융자되는 현상을 어떻게 막아내야 할 것인가.
돈은 사람 몸 속에 흐르는 혈액과 같은 것이어서 이 혈액이 닿지 않는 지역은 반드시 괴사해버리고 만다. 이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지역재투자법'과 같은 정책은 매우 절실하다.

인천의 돈이 인천에서 돌게 하는 것, 이는 지역에서 영업하고 있는 상업 은행들의 반발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또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e음카드를 통해 많은 시민들로부터 공감대를 얻었다. 그럼 이제 우리 지역의 은행 자금이 우리 지역에 골고루 흐를 수 있게 하는 지역 차원의 금융정책과 그 시민적 실천을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