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재능기부 20년, 보람이 차곡차곡
▲ 임현숙 장인은 "즐겁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라며 삶에 임하는 태도와 올바른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가위질이 서툴렀던 시절
컷 연습하려 시작한 봉사
어느덧 화장·한글교육도
31년 경력 업계 대모로
대안학교 열어 후학양성도


패션의 완성은 헤어스타일이라는 말이 있다. 맵시 있게 손질한 헤어는 사람의 인상을 구분 짓는 중요 요소다. 나에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 하나는 외모의 단점을 커버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해준다. 둥근 얼굴, 각진 얼굴, 곱슬 머리, 삐친 머리 …. 세상 모든 머리에 마법을 거는 미용의 연금술사가 있다. 경기도 동두천에 살고 있는 임현숙(50) 장인을 23일 만났다.

#고향에서 수십년 지켜온 자리

어떤 이는 원장님, 어떤 이는 교수님, 또 어떤 이는 좋은 일 하는 양반…. 임현숙 장인을 부르는 호칭들이다.
미용계에 몸담아 온 세월만 올해로 31년째. 그가 미용계에 대모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여 년 전부터 동두천 중앙로에 자리한 미용실 '美미장'과 그곳을 지켜온 임 장인. 그는 동두천 유명인물로 지역민들의 삶 속에서 오랜 시간 함께해 왔다.
"동두천에서 나고 자라 미용실도 이곳에서 열게 됐죠. 미용인에게 자신만의 숍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 뜻깊은 일입니다. 내 고향 동두천에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유년 시절, 미술에 소질이 남달랐던 임 장인은 미술대학 진학을 꿈꿨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꿈을 접어야 했다.
그는 본인의 재능을 살려 기술을 배우겠다는 일념 하에 고등학교 졸업 직후 서울 강남의 한 미용실에서 일하며 미용계에 첫발을 들였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미용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 달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악명 높은 미용 선생 밑에서 혹독하게 일을 배워야 했다.

"악명 높은 선생님 밑에서 배운 제자 중 최장수 학생이 바로 접니다. 그만큼 근성 하나는 자부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니 힘든 순간이 찾아와도 즐겁게 일할 수 있었죠."

#동두천 사랑방을 만들다

10년간 연마한 미용기술을 가지고 고향인 동두천으로 돌아온 임 장인은 1998년 '美미장'을 오픈했다. 이후 한 곳에 자리하며 수십년을 지역민들과 함께하다 보니 미용실은 사랑방이 됐다.

"워낙 오래된 단골 고객이 많아요. 꼬마 숙녀였던 손님은 엄마가 돼서 아이와 함께 찾아오기도 하고 美미장의 오랜 고객이었던 손님은 멀리 이사를 간 뒤에도 이곳으로 머리를 하러 옵니다. 그럴 때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이 들죠."

동두천 미용계에 살아있는 전설이자 대모인 그는 2005년 되던 때, 경복대학교 미용예술학부 교수로 강단에 서며 후학 양성에도 열정을 다했다. 제자들이 성장해 가는 것을 보며 더 많은 미용인들을 교육하기 위해 대안학교를 설립했다.

"학교 밖 퇴학 위기에 놓인 아이들에게 미용기술을 가르칠 요량으로 대안학교를 운영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개인 사정상 학교의 운영을 중단했지만 당시 제자들이 현재는 어엿한 미용인으로 성장해 종종 저를 찾아오곤 합니다. 그럴 때 보람을 느낍니다."

평소 투철한 봉사 정신으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임 장인은 재능을 십분 활용해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한 이미용 봉사를 20여 년째 해오고 있다.

"솔직히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봉사라기 보다 연습을 위한 것이었어요. 미용기술을 배우기 시작할 때 실전 연습이 필요해 재활원을 방문했었습니다. 거기서 미용 봉사라는 이름으로 커트를 했는데 사실 초보자가 봉사를 한다는 것이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실수하는 일도 많았고요. 제가 봉사를 하는 게 아니라 저에게 머리를 맡겨주신 분들이 봉사를 해주시는 기분이었습니다. 이후 죄송한 마음에 정기적으로 재활원이나 요양원을 찾아다니며 위생 미용 봉사를 하게 됐습니다."

#봉사하는 미용사

임 장인은 지역에서 왕성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재활원 위생 미용 봉사를 비롯해 '평화로 적십자' 회장으로서 동두천 지역 내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한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동네 어르신들의 리마인드 결혼식과 장수 사진 촬영시 메이크업과 헤어를 연출해주고, 청소년 단체 RCY 지도교사를 맡아 아이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과히 '봉사왕'이라 불릴 만한 임현숙 장인.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에 이토록 나서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주변에서 욕도 많이 먹고, 돈도 안되는 봉사를 왜 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제가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는 오랜 기간 미용일에만 몰두해 온 저를 위한 일종의 선물입니다. 봉사를 하면서 느끼는 보람은 그 어떤 것보다도 힐링이 됩니다."

이 같은 임 장인의 공로는 2015년 경기도문화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오로지 미용과 봉사의 길을 걸어오며 미용인으로서는 정점에 선 그이지만, 여전히 임 장인은 새로운 꿈을 위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저의 철칙 가운데 하나는 모든 일을 즐기자는 긍정적인 생각입니다. 어느덧 쉰 줄에 들어서면서 충분히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졌지만 안주할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일을 고민하고 있어요. 특히 동두천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지에 대한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