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인천을 읽다] 주먹왕 김 산  
[시, 인천을 읽다] 주먹왕 김 산  
  • 인천일보
  • 승인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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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먹은 크다. 엉덩이보다 크고 머리통보다 크다. 리어카보다 크고 사장님 흔들의자보다 크다. 마트의 반쪽짜리 수박보다 크고 아프리카코끼리가 싸 놓은 똥 무더기보다 크다. 그는 주먹을 버스 손잡이에 넣었다가 목적지에 내리지 못한 적이 여러 번이다. 그의 주먹은 어디든 들어가지만 어디든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윽고, 그는 주먹을 먹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건초 더미에서 말라죽은 개똥벌레 맛이 났고 어떤 날은 오래된 서랍 속의 지우개 맛이 났다. 그는 주먹을 쥔 손을 풀고 주먹이 되는 과정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주먹을 쥐게 했던 어떤 완력이 공기 속으로 분해되었다.
공기는 어떤 슬픔과 분노로 가득해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다시 주먹을 천천히 쥐자 세계는 지극히 고요해졌다. 인도 위로 내달리는 불닭집 배달 오토바이의 주먹은 어떤 시간을 그러쥐고 있는 것일까. 주먹을 펴고 담배를 문 손가락 사이로 비로소 주먹의 온도가 흩어진다. 참았던 주먹을 펴자 온 세계가 먹구름이다. 그가 주먹을 펴자 비가 내린다. 당신은 샅이 부러진 우산을 그러쥔다. 주먹을 불끈 쥐고 횡단보도를 걷는다.

▶ 비가 온다. 그의 주먹은 크다. 주먹을 쥔 손을 풀면 주먹을 쥐게 했던 어떤 완력이 공기 속으로 분해되며 공기는 어떤 슬픔과 분노로 가득해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어떤 슬픔과 분노가 그의 주먹을 그토록 크게 했을까. 다시 주먹을 천천히 쥐자 세계는 지극히 고요해졌다. 그가 주먹을 쥐는 것은 어떤 슬픔과 분노를 참아내는 것. 그러나 슬픔과 분노가 주먹만으로는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참았던 주먹을 펴면 세계가 온통 먹구름, 비가 내린다. 다시 주먹을 불끈 쥐고 걸어가겠지만 지금은 잠시 주먹을 펴는 시간. 주먹을 펴고 담배를 문 손가락 사이로 비로소 주먹의 온도가 흩어지는 시간. 비가 내린다. /권경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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