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한담] 오비츄어리(obituary)
[인천한담] 오비츄어리(obituary)
  • 인천일보
  • 승인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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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복 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이순을 앞둔 나이가 되면 유수처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갈 거라는 선배들 조언이 무색하게 올해는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다. 특히 형님의 부고 소식은 태풍의 눈처럼 주변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상을 정지시켜버리는 듯했다. 이런 현상을 다섯 번이나 겪어 이력이 붙을 만도 한데 여지없이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회한들은 반복적으로 가슴을 짓눌렀다. 그럴 때마다 '좀 더 잘 해드릴 걸, 한 끼 식사라도 더 나눌 걸' 하는 생각들이다.

평범한 삶은 없다. 어느 누구도 제 자신 앞에 놓인 인생을 평범하게 볼 리 없다.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의식주 해결과 생로병사 등 전형적 행태로 보면 '평범'이란 말에 납득이 가지만 삶의 행위에 대한 미시적 평가와 개인사적 의의 면에서 따져봤을 때 보편이라는 범주에 일방적으로 소급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삶과 생활이란 단어가 주는, 같은 듯 다른 어감에 대한 정리의 필요성도 느꼈다. 존재감과 존재 혹은 자존(自尊)이라는 영역에서 분명 다르게 인식되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길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꿈길에도 길이 있고 벼랑 위에 있어도 안광이 지배하듯 세상을 보면 길이 보인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왔다. 결국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교훈적이며 현실적 반성으로 일관해 있는 초상집 풍경은 그야말로 실질적 배움의 현장이다. 평범한 생활을 했던 형님은 평범함 그 자체였으며 어머니처럼 기도했고 아버지처럼 성실하게 살으셨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 윌리엄 맥도날드 기자가 쓴 '뉴욕 타임스 부고 모음집(창비)'이 떠올랐다. 1854년부터 현재까지 세계적 사건의 중심부에 있던 유명인의 부고를 편집한 것인데, 유명과 무명을 떠나서 죽은 자들에 대한 살아 있는 자의 최고 예의라는 생각이다.

여하간에 뉴욕 타임스퀘어 네거리에서 인파에 휩쓸려 무감하게 떠다녀야 했던 순간을 불식시켜버리는 역사적 장소성에서 비롯된 부고모음집과 형님의 부고 소식은 이렇게 묘하게 뒤섞이고 말았다.
1988년 7월15일 인천일보가 창간했을 당시만 해도 부고란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의 광고였기에 명함 크기부터 전면에 이르기까지 부음을 알리는 소식들은 다양했다. 엔간한 사람 아니면 지면에 생애를 소개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시애틀타임스의 경우 부고란을 빌어 망자를 알릴 경우 1인치 크기는 95달러, 글을 쓸 때는 121달러, 사진을 게재할 경우에는 150달러 등으로 요금표를 지면에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인천의 신문들은 암암리의 거래에 그쳤을 뿐, 가격 공시는 물론 부고 담당기자조차 없이 지면 게재에만 목적을 두는 것처럼 보였다. 인천의 신문들이 부고란과 단절했을 때, 상업적 비난 여론에 휩싸였던 뉴욕타임스의 165년 동안의 부고 기록물은 시대의 인물과 당대의 상황을 압축해 전달해줬다는 점을 넘어 가늠할 수 없는 인류애의 숭고함이 엿보였다.

며칠 전 지팡이를 쥔 불편한 걸음이었지만 언제나 미소를 놓지 않고 코앞에 둔 졸수잔치 운운하며 인사를 나누었던 한 분께 조문을 드렸다. 늦은 밤이기도 했지만 문상하러 온 사람은 혼자뿐이었다. 국화와 백합에 둘러싸인 채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초상 앞에는 가눌 수 없는 슬픔에 젖어든 상주가 홀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 '은성다방'의 별이 잠들어 있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아물 무렵이었지만 여전히 그 깊은 내상에 힘들어했을 1960년. 예술에 목숨까지도 바쳤을 만한 인천의 예술인들이 즐겨 찾던 곳이 바로 은성다방이다. 문화 불모지로 여겼던 인천이지만 신포동 은성은 오소회(五素會) 창립을 필두로 독창회, 시낭송회, 전시회, 출판기념회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예술가들이 꿈길 밖으로 길을 내기도 했다. 작금의 인천 문화의 길을 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유수한 선배들의 피눈물 같은 예술혼 덕이라 감히 말해 본다.
이분들의 배냇공간 은성, 그 별들의 산파 김윤 프란체스카 향년 90세. 별들 속에서 은별 하나가 나타났다. 이제 그 별을 다시 기록해야만 하는 시대를 낯설게 걸어갈 참에 질감 있게 손에 쥐어지는 인천인의 부고 모음집 한권 가슴에 안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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