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정치2부 기자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지난달 24일 서울에서 열린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에선 의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곡 '기다리는 마음', 가는 데만 13시간이 걸리는 이국 외국인의 노래로는 이례적이었다. 헝가리 출신 지휘자 이반 피셔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부다페스트 시민들과 우리 단원들은 마음을 다해 다뉴브 사고 유족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한다"며 추모공연을 소개했다. 객석에 앉은 이들이 웅성거린 것도 잠깐이었다. 2분여의 짧은 노래가 끝나자 공연장엔 무거운 침묵이 내렸다. 관객들의 짧은 훌쩍거림이 간간이 이어졌을 뿐이다.

가끔 국회에서 그 순간을 떠올리곤 한다. 아이들의 이름을 딴 '태호·유찬이법'에 대해 말하는 부모님을 볼 때나, '과거사기본법'을 논의해달라며 유가족이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 또 잠을 자다 숨졌다는 집배원 동생에 대해 말하다 정적이 이어질 때… 그때마다 나는 무겁디무거운 침묵의 순간을 떠올린다.

사실 국회에서 법안 제·개정을 다투는 문제들은 지금으로선 해결책이 없다는 의미다. 각 민원들은 관련 기관을 다 훑고 먼길을 돌고 돌아 최후의 수단으로 국회에 도달한다. 현대사의 비극을 다루는 과거사기본법만 해도 반세기 넘게 진상규명을 기다리는 어르신이 태반이다.
하지만 끝은 '계류 중'이다. 국회의원들이 내놓은 법안들은 정치적 쟁점 사안이거나 혹은 아니라는 이유로 테이블 위에 올라오지도 못한다.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따금씩 '식물국회'를 증명하는 통계치로만 종종 다뤄질 뿐이다.

여전히 1만5000건이 넘는 법안이 남아있지만 아홉달 남은 국회는 정치 공방으로 삐걱대고 있다. 이러다 해가 바뀔 때쯤 금배지를 향한 본격적인 경주가 시작되면 남겨진 법안들은 자연스레 잊혀질 것이다. 내년 4월 이후 의원회관에 새로운 주인이 들어서면 그제서야 하나둘 법안을 들여다보는 이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때 여야의 정치적 협상을 통과할 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매년 똑같은 주제로 열리는 토론회에서 늘 비슷한 지적을 내놓고 있다"는 공청회에서의 푸념이 슬픈 이유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그래서 끊이지 않는 우리의 훌쩍거림이 언제 멈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