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 인하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분노의 포도>는 존 스타인벡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명작이다. 1930년대 농토에서 쫓겨난 조드 일가족이 새 일자리를 찾아 서부로 이동하는 과정에 겪는 고초와 계속되는 고단한 삶을 그린 유명한 작품이다.
당시 현실에 바탕을 둔 이 소설에서 소작농들을 땅에서 몰아낸 것은 환경재앙과 자본이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30년대 오클라호마주에는 무분별한 개간과 가뭄의 영향으로 극심한 모래 폭풍이 덮쳐 농사를 작파해야 할 지경에 이른다. 인정사정 없는 은행이 보낸 트랙터는 집과 농지를 가차없이 밀어버리고 결국 이들은 모든 걸 포기하고 일자리가 있다는 서부로 떠난다. 그러나 온갖 난관 끝에 도착한 서부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변함없는 배고픔과 고난이다. 트랙터는 이 소설에서 소작농을 몰아내는 비인격체 거대자본의 첨병 역할을 한다.

80년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오늘날 지구 어느 한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해도 놀랍지 않다. 이 소설이 갑자기 생각난 것은 우리나라 벤처기업 신화를 만든 사람 중 한명인 네이버 창업주 이해진 씨의 발언 때문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를 옹호하는 측과 택시 기사 측이 대립하는 중에 '트랙터를 만드는 회사보고 농부의 직업까지 책임지라고 하면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추운 겨울에 택시를 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려 본 사람은 안다. 평소 잘 되던 호출 서비스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데 눈앞에 빈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경험을 해보면 그 야속함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빈차를 나누어 탈 수 있도록 하는 우버는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나라마다 이와 유사한 서비스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 출퇴근 시간에만 이러한 제도의 시행을 논의하자는데도 수입 감소가 뻔한 택시 업계 종사자들의 반발이 극심하다. 이에 대한 정부, 업계, 일반 국민의 생각은 다양하다.

우버는 맨손으로 시작하여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업체로 성장했고 소위 혁신의 상징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 사업이 난 좀 불편하다. 차량 공유 서비스가 시작되어도 택시 수요가 커질 일은 전혀 없으므로 기존 택시기사의 수입 감소는 뻔하다. 택시기사의 수입은 여러 일반인들과 함께 파편화되는 반면 중개수수료는 특정 개인 또는 업체에 집중되는 일만 생길 것이다. 대형 택시업체 사장의 이윤이 동종 업체의 또 다른 사장에게 이동하는 문제라면 우리가 고민할 필요가 없는데, 이 문제는 그렇지 않고 택시기사를 직업으로 하는 모든 사람이 치명적 피해를 본다.

미국에서도 혁신적이라는 평과 함께 짧은 시간에 대단한 사업으로 성장한 모델이고, 여러 나라에서 유사한 형태의 사업이 생겨 자리 잡고 있으니 소위 '벤처' 기업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사업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이바지를 하고 있는지는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한 나의 개인적 갈등 중에 이 대표의 '트랙터와 농부'의 발언은 섬광처럼 다가왔다. 과연 차량 공유는 21세기의 트랙터인가? 소작농이 몰려난 그 자리를 차지한 트랙터와 택시기사의 직업을 빼앗는 차량 공유는 같은 맥락인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소설 속의 묘사와는 별개로, 결과적으로 트랙터는 농업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트랙터가 가져온 생산성 향상은 농산물 생산 비용을 떨어뜨리고 결국 대중들의 생활 향상에 이바지했다. 우리의 차량 공유가 사업 시행자들에게는 부를 축적하게 하겠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어떤가. 추운 겨울에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의 불편함은 해소되어야 하겠지만 그게 모든 택시기사들의 직업을 뺏을 만큼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을까?

불친절함과 불편함을 내세우며 차량 공유 서비스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부가 집중되는 것 외 어떤 사회적 기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버 서비스 기사가 직업 수준으로 도달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입증됐다. 단순히 택시기사의 임금을 그보다 몇 배 많은 사람이 나눠 가지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차량공유 서비스는 트랙터일까. 아니면 노예를 값싸게 수입해서 부를 불리던 플랜테이션 농장주일까? 혹시 우리는 1930년대에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1800년대의 미국으로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생각으로 돈을 많이 모을 수 있다고, 소위 벤처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는 없다. 반짝인다고 모두 금은 아니다. 이 여름에 추천하고 싶은 책, <분노의 포도>다. 조드 일가의 고난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