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찰스 보이콧은 19세기 아일랜드 어느 대지주의 마름(토지관리인)이었다. 흉년이 든 어느 해 소작료를 못낸 소작인들로부터 그 땅을 뺏으려 들었다. 소작농민들은 C.S.파넬을 중심으로 뭉쳐 찰스 보이콧 배척운동에 나섰다. 그 농장에서 일하기를 거부하고 지역 상인들도 보이콧에게는 물건을 팔지 않았다. 그 결과 소작인들의 배척을 받아 오히려 마름이 쫓겨나는 일이 벌어진다. 이후 보이콧은 부당한 행위에 맞선 집단 거부운동으로 굳어졌다. 처음에는 노동운동의 주된 수단이었다. 1차적 보이콧은 노동자들이 뭉쳐 사용자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2차적 보이콧은 제3자에게 사용자와의 거래중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용자도 보이콧을 했다. 직장을 폐쇄하고 이들 노동자들이 다른 곳에 취업 못하도록 손을 쓰는 등이다. ▶국제정치에서도 자주 나타났다. 미국의 독립전쟁도 영국 동인도회사 차(茶)에 대한 불매운동으로부터 촉발됐다. 1980년 모스크바 하계올림픽에는 한국도 불참했다.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에 맞서 미국이 자유진영 국가들에게 보이콧을 요청한 때문이었다.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 규제에 맞서 '보이콧 재팬' 운동이 한창이라고 한다.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등 행동강령도 뚜렷하다. 마트 점주들이 진열대에서 일본 제품들을 철수시키는 '팔지 않습니다'도 가세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의 매출이 30%나 줄었다고 한다. 반대로 국산 모나미 볼펜의 매출은 5배나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모나미 153' 볼펜도 1960년대 일본 볼펜회사의 기술 전수 덕분이었다는, 온라인상 과거사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지 않습니다' 보이콧 앞에서는 양국 여행자들의 마음 고생도 없지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한해 750만명이 일본으로 가는 요즘이다. 지난 봄 일본 벚꽃시즌에만 120만명이 몰려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일본 긴키 지방의 와카야마·나라고교에서는 1975년부터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온다고 한다. 45년째인 올해도 이달 초 경주·공주 등을 다녀갔다. ▶'반일'이나 '혐한(嫌韓)'을 지금 한국인과 일본인의 주류 정서라고 볼 수는 없다. 요즘 일본인의 한국 비호감 정서에는 '아키레타(질렸다)' 감정이 깔려있다고 한다. 이 역시 아베의 정치계산에 따른 결과 일지도 모른다. 한국인이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마찬가지 감정이 있다. 문제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못난 정치가 양국 시민들을 갈라 놓는 사태다. 이왕 시작된 '보이콧 재팬'이지만, 정말 독하게 할 날은 앞으로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