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럼] 도시락과 급식
[제물포럼] 도시락과 급식
  • 신정훈
  • 승인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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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 경기본사 사회부장

1교시가 끝나기가 무섭게 한 학생이 번개같이 움직인다. 목적지는 교실 한복판에 놓인 무쇠난로. 난로 뚜껑 위에는 철제로 만든 사각 도시락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중 한 개를 잽싸게 챙긴다. 1분도 채 안 돼 반찬을 지키려는 자와 약탈하려는 자 간에 숨막힌 대결이 벌어진다. 그러다 반찬통을 엎어버리면 걸쭉한 욕지거리가 교실을 한바탕 휘젓는다. 10분 후 수업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선생님의 고함소리. "언놈이 도시락 까묵었노."


이젠 아련한 추억이 된 1980년대의 중학교 풍경이다. 그 당시 사각 철제 도시락 안에는 밥이랑 계란후라이, 김치, 멸치, 콩자반 등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나마 계란후라이는 중상층은 돼야 먹을 수 있는 반찬 중 하나였다. 혹시나 반 친구들에게 뺏길까 봐 밥 아래에 깔아서 먹는 꼼수도 부렸다.

아마도 지금 20대는 이런 이야기를 대중매체를 통해서 어렴풋이 짐작하겠지만 40대이상 세대는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듯하다. 학창시절의 점심시간은 하루 중에 가장 신나고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학창시절 내내 점심시간은 삶의 낙이자 보람이었으며 학교를 다니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만큼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급식이 보편화되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꼰대 취급받기 일쑤다.

사실 우리나라의 학교 급식은 6·25전쟁 이후 1953년에 아동의 구호를 위한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과 미국경제협조처(USAID) 등 외국 원조에 의해 처음으로 실시됐다. 당시에는 무상으로 급식을 시작했는데 대상은 초등학생이었다. 기간은 1972년까지 20년간 실시됐으며 주 메뉴는 빵급식이었다.

외국 원조가 종료된 1973년부터는 정부와 학부모 부담 아래 대상 학생 규모는 감소됐지만 빵급식은 그대로였다. 다만 농어촌지역 일부 학교에서 학교 자체의 생산활동을 통한 자활급식이 시범적으로 실시됐다.
1980~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어느덧 우리나라도 경제·사회·문화 환경이 선진국형으로 바뀌면서 핵가족화되고 소자녀 가정이 주류를 이뤘다. 또 여성의 사회참여가 확대되면서 가족의 식사나 자녀의 도시락 준비가 부담으로 작용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린 학생들은 영양 부족보다는 영양의 불균형, 올바르지 못한 식생활로 건강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듯 정부는 1981년 '학교급식법'과 '학교급식 시행령'을 제정했다. 이 법안을 토대로 초등학교 급식은 1998년부터 전국 모든 학교에서 실시됐다. 물론 급식비의 일부는 학부모들이 부담했다. 현재의 무료급식은 2007년에 경남 거창군에서 시작됐다. 사실 유상급식에서 무상급식으로 전환되기까지 많은 난관이 있었고 사회적 합의도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전격 사퇴였다. 당시 오 시장과 새누리당은 교육감 선거와 지방선거의 여론을 의식해 불가피하게 저소득층 30%에게 선별적으로 무상급식을 시행하도록 하겠다는 의견을 폈다. 반면 민주당은 초등학교 저학년을 시작으로 중학생까지 전면 무상급식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갈등을 빚었다.
결국 이 문제를 주민투표에 부치게 됐고, 최종투표율 25.7%로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는 투표율 33.3%를 달성하지 못했다. 주민투표에서 패배할 경우 시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힌 오 시장은 결국 시장직을 사퇴했다. 2011년까지는 무상급식의 찬반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면 2012년부터는 학교 내 비정규직 차별문제가 불거졌다.

2012년 11월 전국 초·중·고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 하루 동안 급식 운영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때는 파업에 동참한 인원과 기간이 길지 않아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파업 규모도 점점 커졌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학교가 있는 경기도의 피해가 심각했다.
특히 가장 규모가 컸던 올해는 590개의 학교에서 빵과 주스를 나눠주거나 외부 도시락으로 대체급식을 제공받았다.

언론매체와 학부모들도 파업에 대한 인식이 극과 극을 달렸다. 또 누구의 말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가 얽혀 있었다. 복잡한 이 문제를 고민하던 중 현장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의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오늘 급식 없다고 해서 아침밥 많이 먹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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