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최저임금문제가 우리사회에 논란거리를 제공하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외국인에 대한 최저임금은 달리 할 필요가 있다는 야당 대표의 주장이 나오고 무차별적 공격이 쏟아졌다. 적절하지 못한 정당대표의 발언은 비판받을 수 있지만 금번 반응은 구태의연해 보인다. 보다 나은 사회건설을 위해 적폐를 청산하자면서 의견이 다르다고 무차별적 공격을 하는 것은 시대 흐름의 역행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이라 할지라도 공론의 장에서 논하는 절차를 밟지 않는다면, 늘 하나의 통일된 의견만이 있어야 하는 비민주적 국가가 된다. 비판받아 마땅한 정치적 언행이 있을 수 있지만 정부정책에 대해 내놓는 의견을 매도부터 하는 것은 정치 적폐의 악습일 것이다. 한국의 정치는 여전히 말꼬리를 잡아 상대를 추락시키려는 의도만이 살아 숨쉰다.

사회에는 늘 처지가 다른 집단이 있어 대립적일 수 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는데 그 어느 한쪽만을 보고 정책을 수립한다면 반대쪽의 반발은 필연이다.
정치는 양자의 중간선에서 필요에 따라 덧셈 뺄셈을 하며 정책을 결정하는 기술인데 판단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양자 간의 대립으로 공멸을 가져올 수도 있다. 최저임금정책도 어려운 쪽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고용주와 노동자 모두가 납득하는 선을 찾아내야 한다.

최저임금제와 주52시간근무제 등으로 고용을 포기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미·중 간의 무역 갈등으로 경제여건은 악화일로이다. 한국의 경제가 우리의 힘만으로 결정되면 좋으련만 늘 주변국에 휘둘리고 있어 지금 좋더라도 무역 상대국의 정치 놀음에 하루아침에 추락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경제의 성장 가능성에만 무게를 둔 최저임금정책은 상황 변화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비판이 따르더라도 상황이 개선되어 간다면 성공이지만, 비판이 계속되며 상황이 악화되어 간다면 정책은 실패인 것이다.

한국이 세계적 수준의 고임금시대로 접어들었다. 일본의 경제사정이 좋아져 일본어 전공자들에게 취업의뢰가 많아졌다. 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급여가 기대치에 못미쳐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의 대졸 초임이 얼마인데 그 돈 받고서는 일본에서 근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취업이 어렵다는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취업이 절박하다면 어떤 곳이든 문을 두드리고 일단 도전해 보려 해야 할텐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고생한 부모들이 일궈놓은 삶을 공유하면서 납득할 만한 직장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비친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다며 정부에서 쏟아내는 각종 정책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대책이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겉모습만을 본 결과일 수도 있다.
결국 한국의 경제는 임금이 문제로, 대기업들의 고임금이 한국경제 전체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일을 하던지 간에 모두 소득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다. 장사에서도 백원 받으면 충분한 물건을 천원, 만원 받아내려는 그런 구조가 되고 있다. 떼돈 벌 생각들 뿐이다.

한국의 임금수준을 감당하지 못해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기업이 많았는데 그곳 인건비가 상승하면 다시 어느 나라로 가게 될지 궁금하다. 퍼주기만 했다는 개성공단도 인건비가 저렴해 가능했을 것이다.
국내 고용 창출을 위해 해외 진출 기업을 다시 국내로 되돌아오게 할 필요가 있다면 국내의 임금제도를 어떻게든 기업 경쟁력과 맞출 필요가 있다. 국내의 고임금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타국의 저임금을 택하는 것인데 외국인 고용의 의미를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한다면 과한 최저임금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중소영세기업들의 의견을 외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도 요구하는 상황이다. 외국인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한국으로 몰려드는 시대를 맞이하여 그들에게 적용할 최저임금을 달리하자는 의견이 외국인 고용의 특수성인지 외국인에 대한 혐오나 인종차별인지 목소리를 달리할 수는 있겠지만 최저임금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우리의 상황이 차이를 점진적으로 해결해 갈 능력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남북문제 하나도 한국의 힘으로 풀어나갈 수 없는 엄연한 현실에서 일부 정치가들이 정의인양 내세우는 코스모폴리타니즘적 사고는 한국의 처지를 냉정하게 살피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절대가치도 국가를 지켜내는 안정적인 상황에서 추구해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