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청산리전투 영웅 '망각의 늪'에 밀어넣다
▲ 김삼웅 지음, 레드우드, 294쪽, 1만6000원.

▲ 신장이 190㎝에 이를 만큼 장대했던 홍범도는 '구척장신의 장군'으로 불렸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부리부리한 눈, 숱 많은 눈썹과 수염을 가진 그는 항상 군복을 입고 총과 수첩을 지니고 다녔다. 수첩에는 수없는 전투에서 생사를 달리한 전우들의 이름이나 전투현황 등이 기록돼 있다. /사진=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갈무리

'축지법 쓰는 장군' 추앙받던 홍범도
소련공산당 가입·강제 이주에 묻혀
광복후 74년 유해 귀환 논의도 없어

"홍범도는 일본군이 스스로 '하늘을 나는 장군(飛將軍)'이라 부를 정도로 신출귀몰한 유격 전술로 일본군을 격파하여 명성을 날렸다. 당시 평안도 지방에서는 '축지법을 구사하는 홍범도 장군'이라는 '전설'이 나돌 만큼 민중의 영웅으로 추앙되었다."(서문 '홍범도 장군 진혼사' 中 8쪽)

2020년은 독립전쟁의 전승을 거둔 봉오동·청산리 대첩 100주년이다. 모두가 기억하는 일제강점기 3대 대첩 중 2대 대첩이지만, 아쉽게도 이 신화의 주역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는 온전하게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평양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7일 만에 어머니를 잃고 젖동냥으로 어렵사리 자라다 9세에 아버지까지 여읜 소년 홍범도. 그는 머슴으로 살다 15세에 나팔수로 병영 생활을 시작한다. 1895년 본격 의병투쟁에 투신한 홍범도는 간도와 연해주에서 크고 작은 항일 전투를 무수히 치르는 동안 아내와 아들을 잃는다.

그러나 역경에 굴하지 않고 그는 대한독립군 창설과 국내진공작전 및 봉오동·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독립 영웅으로 우뚝 선다.

홍범도는 용맹함과 기발한 전투력으로 이름을 떨쳤고, 부하와 한인사회를 배려하고 낮은 자세로 각 독립군 부대와의 통합을 자신의 명예보다 먼저 생각했었다. 러시아 망명 시절 소련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 이주를 당한 것 등은 그의 행적을 너무 오랫동안 망각 속에 묻어 버렸다.

일제가 가장 겁냈던 의병장, 부하들과 주민들이 존경하고 따르던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정통 무관 출신은 아니지만 남다른 지략과 전술로 일제와 싸웠던 홍범도 장군은 광복 74주년이 되는 지금까지 '유해 귀환' 논의조차 없는 '망각의 독립운동가'가 되었다. 옛 소련이 붕괴되는 1980년대 말까지 카자흐스탄은 '철의 장막'에 가려지고, 홍범도의 소식도 차단되었다. 한때 레닌을 만나 권총을 선물받고 볼셰비키에 입당한 일 등을 이유로 일부 역사학자들에게 '좌파 독립운동가'로 몰리기도 했다.

홍 장군의 유해를 언제까지 이역만리에 방치할 것인가? 저자는 홍범도 장군의 활동에 대한 그간의 오해와 오류를 바로잡고자 애썼다. 그리고 머슴 출신의 산포수 의병장, '저명한 조선 빨치산 대장'이라는 칭호 때문에 기피의 대상이 된 건 아닌지 반문한다. 어떠한 연유와 배경이든 공적의 상당 부분이 묻히거나 다른 독립운동가에게 전공을 빼앗기는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