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읽기] 인천도시역사관 '없던 섬, 송도'展
[인천문화읽기] 인천도시역사관 '없던 섬, 송도'展
  • 이주영
  • 승인 2019.07.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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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이름을 남기고 자본은 공간을 만들다
▲ 송도국제도시. /인천일보DB

 

 

▲ 1937년에 발간된 '경승의 인천' 표지. /사진제공=인천도시역사관

 

▲ 1937년에 발간된 '경승의 인천'의 송도유원지 일대를 표현한 페이지. /사진제공=인천도시역사관

 

▲ 송도국제도시 조감도. /사진제공=인천도시역사관


송도(松島), 일제의 야욕과 현재의 꿈이 이어진 곳이다. 없던 섬 송도가 어떻게 인천에 탄생하게 됐을까. 송도는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인천의 대표적 공간이다. 인천도시역사관에서 송도를 주제로 한 기획전시를 연다. 송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옛 지명으로 쓰일 때부터 관광지로 조성된 일제강점기, 그리고 국제도시란 별칭에 걸맞게 인천의 1번지 도심으로 변모한 지금까지도. 송도, 그곳에서 이뤄진 한 세기에 걸친 이야기가 이번 기획전시를 통해 풀어진다. 없던 섬 송도에서 대지로 변한 송도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인천 사람들에게는 두 군데의 송도가 존재합니다. 기차역과 유원지가 있었던 과거의 송도와 국제도시로 꾸며진 지금의 송도가 그것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혀 다른 두 개의 공간에 공존하고 있는 송도라는 이름이 인천에 등장한 것은 불과 100년이 채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송도라는 이름을 유원지와 기차역에 그리고 바다를 메워 만든 신도시에 붙게 한 것은 자본과 땅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일 것입니다. 자본과 땅에 대한 욕망에 이어 우리는 또 어떤 욕망에 집중해야 비로소 살만한 도시 송도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인천도시역사관이 10일부터 10월6일까지 '없었던 섬, 송도 에피소드 1. 송도 일대기:욕망, 섬을 만들다'를 주제로 기획특별전을 연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옛 송도와 확 바꾼 지금의 송도 일대기를 기획특별전에 담을 계획으로 연수구 도시역사관 2층 기획전시실 아암홀에서 진행된다.

기획특별전을 준비한 박민주 학예사는 "송도라는 공간과 그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키워드는 '욕망'"이라며 " 송도라는 공간에서는 어떠한 욕망이 작용 했을 지를 짚어보는 것에 기획전시를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기획특별전은 ▲첫 번째 욕망, 이름을 가져오다 ▲두 번째 욕망, 관광 인천을 향하여 ▲세 번째 욕망, 공간을 사유(私有)하다로 이뤄진다.

'첫 번째 욕망, 이름을 가져오다'는 "어떤 장소의 이름을 가져오는 것은 그곳과 같아지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한다"는 명제로 시작된다.

박 학예사는 "개항 후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사는 곳마다 야마테쵸우, 혼마치 등 자신에게 익숙한 마을 이름을 가져왔다"며 "그들이 가져온 것은 지명만이 아니었다. 경치가 빼어난 장소에는 일본의 명승지 이름을 붙였다"고 언급했다. 이에 "일본이 명승 마쓰시마가 우리 땅에서 송도가 됐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마쓰시마는 어딜까.

이곳은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만에 위치한 해안 관광지로 소나무가 무성한 260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섬이 해안에 따라 그 아름다움이 변화무쌍하여 예로부터 일본 3대 명승지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송도는 어떤 곳이었을까. 기획특별전에서는 "우리나라 해안에도 송도라 불리는 수많은 섬이 존재한다"며 "그러나 송도라는 섬이 없음에도 송도라 이름 붙은 곳도 여럿 있다. 이들은 대부분 개항장으로 일찍부터 많은 일본인이 거주했던 장소였다"고 관람객에 알린다.

인천의 송도는 그곳의 옛 지명을 앗아갔다.

바닷가 마을에 '송도'라 불리기 전 이곳은 옥골, 독바위, 한나루, 큰앰이라 했다. 조선시대 인천도호부 먼우금면에 속했던 곳으로 1914년 조선총독부 지방행정구역 개편 때 경기도 부천군 문학면 옥련리가 됐다가 인천부 영역이 확대되며 1936년 부천군에서 인천부로 편입돼 일본식 지명인 송도정이 붙였다. 이 때 능허대도 사라지게 된다.

'두 번째 욕망, 관광인천을 향하여'는 교통의 발달을 통한 관광에 집중한다. 이에 항만과 철도가 발달한 인천에 일본 자본가의 관심이 관광으로 쏠렸고, 1937년 여름 송도유원지가 탄생했다. 1920년대 월미도에 버금가는 인천 대표 관광지로 만들자는 일본 자본가의 논의가 시작됐고 1936년 4월 송도유원주식회사가 설립돼 이듬해 33만여㎡(10만평)에 해수풀장, 아동유희장, 조탕, 호텔 등을 갖춘 송도유원지가 개장한다. 6·25 전쟁에 참전한 영국군이 송도유원지를 군인 휴양지로 썼다가, 1958년 영국군 철수 후 1963년 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가 경인지역 최대 여름 휴양지로 송도유원지를 꾸몄다. 그러나 송도유원지는 2011년 9월14일 폐장 후 중고차 매매단지로 활용되고 있다. 송도유원지를 찾기 위해 송도역이 신설됐고, 역에서 유원지까지 송도관광도로가 개설됐다.

'세 번째 욕망, 공간을 사유하다'는 "욕망은 공간의 사유화로 이어지고, 없었던 땅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는 글로 시작된다. 갯벌이던 송도는 모두의 공간이었지만 자본에 의해 공간이 사유화되며 임해주택단지 등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송도는 갯벌을 메워 새로운 섬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노태우 정부의 수도권 200만호 건설계획에 따라 인천시는 송도해상신도시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2010년까지 여의도의 23배 넓이에 인구 25만 규모로 바다 위의 신도시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1994년 첫 매립 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립공사가 한창이고, 2003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며 거대 자본의 새로운 사유화된 공간으로 가치가 치솟았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oe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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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2019-07-10 05:42:41
유익한 전시가 되기를 바랍니다.

단, "松島는 섬이 아닙니다." 처음에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닙니다. 기자께서 썼듯이 송도는 갯벌을 메꾸어 나간 매립지입니다.
일제가 왜곡한 '松島'를 되찾아야 합니다.
송도를 섬으로 풀어갈 것이 아니라, 우리 지명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한자라도 바꾸어야 합니다. '頌都, 칭송받는 도시'로 말이지요.
친일청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