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희 송도소식지 주민기자·시인


'카톡' 하는 경음이 울리면 열어보는 재미도 쏠쏠해졌다. 꽃 편지지에 미사여구를 써가며 손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의 낭만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수첩에 빼곡히 적힌 전화번호도 사라진 지 오래다. 낯선 곳에 여행이라도 갈 때면 지도책을 펴놓고 노선을 체크하던 추억도 이젠 없다. 네비의 위력이 지도책을 장악해 버렸다. 너무나 똑똑해진 스마트폰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해 주기 때문에 생각하기 이전에 터치로 대신하는 문명의 시대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TV가 대중을 사로잡았다. TV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현대인의 필수품 중 하나이다. 과거 어린 시절에는 1980년대가 되면 컬러TV가 집집마다 있을 거라며 흥분과 기대에 부풀었던 때도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것은 얼마나 소확행(작은 행복)이었는지 격세지감이다. 다양한 소식과 정보들이 작은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빠르게 전달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충족거리도 없을 것이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 허우적대는 건 아닐까 염려스러울 정도다. 인간의 성스러운 능력, 사색의 힘을 빼앗아 갔지만 스마트폰의 매력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무궁무진한 세상이 그 안에 존재하고 있으니 손끝의 터치 하나로 지구촌을 넘나드는 셈이다. 어찌 보면 가상세계 속에 살아가는 듯한 생각마저 든다.

문명의 힘이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이 되다보니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파스칼의 말이 무색해졌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맺음도 직접 대면하지 않고 가상의 공간에서 이뤄진다. 게다가 이슈가 등장하면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초점을 모으고 똑같은 화제로 세상이 시끄러워지기도 한다. 심지어 여론몰이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의도적인 행위도 있다. 그러한 대중문화 탓에 이른바 시대의 트랜드를 창조해 내기도 한다. 핫 이슈가 무엇인지,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대화의 창구마저 막혀버리니 외면하고 살 수도 없는 일이다. 더구나 줄임말을 사용하는 신조어나 카톡방에서 사용하는 이모티콘은 새로운 대중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한 컷의 이모티콘으로 함축적인 의사전달과 감정이입이 가능하다. 참으로 재미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편리하다고 해서 마냥 좋기만 할까. 청소년을 바라보는 기성세대는 걱정도 크다. 지하철을 타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길을 걸어갈 때도 마찬가지여서 위험천만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심지어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 때도 제각각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일이 다반사다. 화제의 중심에는 스마트폰에 담겨 있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긍정의 힘도 있지만 부정의 힘도 점점 커지고 있다.
빠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소외되는 인간도 그만큼 많아질 것이고 사회적인 병리현상도 증가하게 될 것이다. 시대에 적응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시대를 거슬러 가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딧불 켜놓고 책을 읽던 고고한 선비정신,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던 느림의 미학이 그립다. 인간의 정신적 힘을 길러 줄 수 있는 고전읽기와 오솔길을 거닐며 여유롭게 사색하는 즐거움이 아쉽다면 구시대의 유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