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헐고 넘나들다

 

▲ 越(월)은 둘로 나눈 담을 도끼로 깨고 넘나드는(走주) 글자다. /그림=소헌

 

우리 속담에 '담을 쌓고 벽을 친다'는 말이 있다. 그동안 의좋게 잘 지내던 관계를 끊고 서로 원한을 품으며 등지고 살아가는 것을 비유한다. 이와 비슷하게, 친구 사이에 서로 멀리하거나 어떠한 일에 전혀 관계하지 않을 때에는 '담을 진다'고 표현한다.

담(담장)은 일정한 공간을 둘러막기 위하여 흙이나 돌 따위로 쌓아 올린 것으로, 비단 해당 지역에만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이나 사람의 마음까지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담은 본디 상대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고의로 소통을 피하거나 막게 되면 반드시 좋지 않은 일을 발생시키게 된다. 이러한 이치를 알리는 속담 하나를 더 소개한다.

'정승도 사흘 굶으면 담장을 넘는다(인기월장人飢越墻)'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되면 무슨 짓이든 하게 되는데 살기 어려워져서 예의나 염치를 돌보지 않게 됨을 경계警戒한다.
남북월장(南北越墻)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담을 넘다. 판문점에는 한강토 분단을 상징하는 높이 10㎝, 너비 50㎝ 남짓 되는 '담장'이 있다. 지난해 4월 남북정상이 손을 잡고 월북 후 월남하며 국경을 넘은데 이어, 이번에는 남북미 정상들이 함께 그렇게 담을 넘나들었다.

越 월[넘다 / 건너다 / 앞지르다]
1走(달릴 주)는 사람(土)이 팔과 다리를 흔들며 달리거나 뛰는 모습이다. 2날카로운 창(戊무) 끝에 반달() 모양의 칼을 단 (월)은 도끼나 창 같은 무기로 쓴다. 3병사들이 도끼처럼 생긴 창( 월)을 들고 들판을 달리고(走주) 언덕을 넘고 강을 건너는 글자가 越(월)이다.

 

墻 장[담 / 경계]
1來(올 래)는 원래 곡식인 보리를 뜻하는 글자다. 2추수한 곡식(來)을 창고(回)에 쌓아만 두고 남에게 베풀지 않아 嗇(색)을 '아끼다·인색하다'는 뜻으로 쓰게 되었다. 3욕심이 많아 창고를 지을 때 흙벽돌(土토)을 써서 튼튼하게 담(墻장)을 만들었다. 4때로는 흙 대신 나무판(장)으로 담을 쌓으면 牆(장)이라 한다. 5어떤 집에서는 가시가 많은 넝쿨(초)로도 경계境界를 두는데 대표적인 것이 장미(薔장)다.

형제혁장(兄弟墻) 형제들이 담장 안에서 다툰다는 뜻으로서 동족상잔同族相殘과 같이 쓴다. <시경>에는 형제끼리 다투다가도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에는 서로 합심해서 막아낸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떠한가? 졸지에 적敵이 되어 오히려 외부의 힘을 끌어들여 형제를 진압하려는 것이 과연 옳은가?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담(墻)으로 갈린 채 살고 있다. 본래 하나였으나 둘로 찢겨져 나뉜 후 남과 북은 따로 정부를 구성하며 국제사회에서 다른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 남북 수뇌首腦들이 앞장섰으니, 일제 강점기 치안유지법에 뿌리를 둔 '국가보안법'이라는 담장을 헐어내고 민족끼리 자유롭게 왕래해야 한다. 헌법 조항에서 가장 두텁게 쌓은 이 담을 두고 통일을 말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전성배 한문학자·민족언어연구원장·'수필처럼 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