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번도 넘게 칠하고 말리고 … '참을 인' 셋이면, 나를 담는 '그릇'
▲ 양점모 장인이 이천 신둔도자예술촌에 있는 공방에서 작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 양점모 장인이 만든 2007년 대한민국공예품대전 국무총리상 수상작 '각'. /사진제공=양점모 장인

 

 

한번 말리는데만 꼬박 8시간
완성까지 길게는 수년 걸려
32년째 계승 … 국무총리상도

작품은 담백하면서 실용 추구
도자기에 입히는 '도태칠기'로
다기·식기 등 생활용품 개발중




깊고 묵직한 천연색 빛깔이 옻나무에 입혀진다. 은은한 나무향과 옻향이 어우러진 공방의 공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칠기는 그렇게 작품이 된다. 이천 신둔도자예술촌(예스파크)에 있는 '옻칠아트MO'의 주인장 양점모(54) 장인은 32년간 옻칠공예를 해왔다. 끊어질 위기에 처한 우리 전통칠공예 기술의 명맥을 수십년째 이어오고 있다. 천년의 빛깔을 칠하는 양 장인을 지난달 24일 만났다.

#자연에서 빚은 오묘한 색채

"옻칠공예는 다른 도료들과 달리 자연에서 나오는 천연재료를 사용해 칠을 해요. 옻칠의 자연스러운 색감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만들어주지요."

양점모 장인은 끊임없는 인내와 청결을 필요로 하는 옻칠아트를 통해 담백한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옻칠은 옻나무 수액을 정제해 천연재료를 섞어 색을 낸 후 목기나 도기 등에 색을 입히는 작업이다. 옻 수액은 마르면서 다른 화학 도료가 만들어 낼 수 없는 깊고 그윽한 빛을 만들어낸다.

기원전 1세기 무렵에 옻칠 흔적이 남아있을 정도로 옻칠은 한민족의 오랜 전통예술이다. 삼국시대 고분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칠기가 출토됐으며 조선시대에는 '칠장'이 있는 경공장(京工匠)과 외공장(外工匠)이 있었다. 오랜 전통을 이어오며 만들어진 옻칠 공예품은 습기와 벌레, 열에 강하고 목기에 칠하면 나무가 뒤틀리지 않는 특성이 있다.

"32년간 옻칠을 하면서 각종 작업을 해봤어요. 일반 사람들은 옻칠하면 반짝반짝 광을 낸 칠기를 생각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만지면 지문이 묻어나기 때문에 일반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지요. 좀 더 실용적이고 대중들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양 장인의 작품은 담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품 소재를 '자연'에서 찾고 있어 편안한 느낌을 준다. 2010년 단독전 'Network'에 전시된 작품들도 거미줄을 보며 만들어냈다.

"자연에서 찾는 작품의 형상을 표현할 때 재료나 기법의 한계로 답답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마당에 나가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별을 쳐다봅니다. 소재도 해법도 자연에서 찾고 있지요."

#기다림과 인내의 과정

"옻칠공예를 만드는 과정은 첫째가 기다림, 둘째가 인내입니다. 한 작품이 완성되기 위해서 길게는 수년이 걸리는 작업을 하기도 하죠."

옻 수액이 마르며 중후한 빛깔을 드러내기까지는 습도와 온도, 시간을 맞춰야 하는 세심한 공정을 거쳐야 한다. 주문제작한 목기에 옻 수액 추출액과 천연염료를 섞어 칠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온도 25℃, 습도 70~80%의 환경에서 꼬박 8시간을 말려야 한 과정이 마무리 된다.

옻칠한 것이 마르면 사포질을 해 표면을 정리한 후 다시 칠을 하고 말리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 그런 과정을 10여번 이상 거쳐야 옻칠 고유의 색감이 모습을 드러낸다.

"옻칠은 정확한 온도와 습도를 지켜주지 않으면 잘 마르지 않아요. 같은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지만 한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작품성이 떨어지고, 뭔가 모자란 완성품이 나오지요. 그래서 끊임없이 기다리고 지켜봐야 합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 과정에서 수없이 오르는 '옻독'도 변수다. 옻칠공예의 두 번째 조건이 인내인 이유다.

"옻칠을 오래하니 사람들이 옻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옻독은 32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오릅니다. 가렵고 작업을 하는 것을 힘들게 하지요. 지금은 요령이 생겨 옻이 오르는 것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사포질을 하며 발생하는 가루에 의한 독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적응이 돼 참고 인내할 뿐이지요."

1988년 대학에 다니며 옻칠공예를 처음 접한 그는 옻칠이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끈질긴 인내와 기다림, 한결같은 정성으로 옻칠을 하다보면 끝없이 비우고 절제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 작업은 그렇게 단순함을 만들어가는 기나긴 여정이라 생각해요."

#도자기에 옻칠을 입히다

장인이 수십년간 만들어온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중에는 국무총리상 수상 작품도 있고, 실생활에 쓰이는 생필품으로 변신한 작품도 있다. 2007년 대한민국공예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작품은 그릇과 수저, 받침대까지 구성된 한 세트다. 물푸레나무로 제작한 그릇은 옻칠을 한 후 삼베를 발라 견고성을 높였고, 자개를 붙여 마무리했다. 판과 수저에도 옻을 칠해 한땀 한땀 자개를 붙였다. 그러면서도 과하지 않은 광으로 고급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작품을 구현했다.

그는 각종 대회에 다수 작품을 출품한 2007~2008년 상을 휩쓸었다. 2007년에 이어 2008년에도 대한민국공예품대전 국무총리상을 수상했으며, 2년 연속 경기도공예품대전 대상을 거머줬다.
수상경력 외에도 국제교류전과 초대전, 단체전, 아트페어에 160여회 참여했다.

양 장인은 얼마 전부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나무로 만든 목기가 아닌 이천의 특산품인 도자기에 옻칠을 하는 '도태칠기'에 도전한 것이다.

"도자기 장인들이 많은 신둔도자예술촌에 공방을 열면서 새로운 시도를 늘 꿈꿔 왔어요. 도태칠기로 다기와 차상, 식기처럼 일상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개발해 대중과 옻칠공예가 더욱 친숙해질 수 있는 방법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향후 도자예술촌의 새로운 특산물이 됐으면 좋겠어요."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