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영 한국정신분석상담학회장

우리나라 중장년이라면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다 기억할 것이다. 사람마다 그것을 어떻게 겪었는지는 기억도 다 다르다. 개인적으로 그 무렵 참석했던 한 모임을 평생 잊지 못한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젊은 의사들이었는데 그 당시 경제가 불안정한 상태여서 경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마침 모임에는 경제학을 전공한 대학 교수가 있었다. 그분은 미국에서 최상에 속하는 경제학과를 나왔다. 젊은 의사들은 국가경제가 어떻게 되는 거냐고 교수에게 물었다. 아직도 그 교수의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의 '펀더멘털'이 아주 견고하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했다. 젊은 의사들은 크게 안심하며 모임의 본래 목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모임이 있던 날로부터 일주일 후에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이 모든 일이 거짓말 같게 느껴진다. 그 후로 펀더멘털이라는 말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그 단어는 뇌에 영원히 각인됐다. 최근 들어 다시 이 단어가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 담당자들이 역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다고 말한다. 오래 전 기억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온다.

세상일은 아니 개인적인 일도 예측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기사에 예견된 사건이었다는 말이 곧잘 등장한다. 이런 저런 사실들을 나열하며 이런 자명한 결과를 예방하지 못했다고 난리를 치른다. 기사를 읽어 보면 정말 그렇다. 모든 지난 사실들이 비극적 결과를 가리키고 있었다. 기자도 이리 잘 꿰뚫고 있는 그 뻔한 사태를 왜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걸까.
무슨 일만 벌어지면 놀라운 선견지명을 보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그런 결과의 발생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 '내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다만 그 선견지명이 사건 전에 나타났어야 하는 데 늘 사건 후에 나타난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사후 과잉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부른다. 이건 어떤 일이 이미 벌어진 후, 그리니까 그 결과가 이미 다 알려진 후, 발생 전에 사건을 예측하는 정도를 과장하는 경향이다. '난 이미 다 알고 있었다니까' 하는 식 말이다. 그런데 정말 알고 다 있었던 것인가.
이것은 결과를 알고 난 후 증거나 신호들이 결과와 보다 관련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그 증거나 신호들을 보지 못했거나 보았다 해도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결과를 안 후 단편적인 사실들이 결과와 관련성을 가지며 의미가 다 통하게 된 것이다.

퍼즐 조각들이 맞춰져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듯 그렇게 확실하게 보이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대형 사고가 난 후 늘 비극적 결과는 너무나 예견된 듯이 보인다. 답을 알고 보니 모든 길이 하나로 통하는 자명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대형 사고에 대한 기사는 종종 다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쓰인다. 다만 그 놀라운 통찰력이 너무 늦게 나타났다는 것이 문제이다.

아는 사람의 이혼 소식을 들을 때도 이와 유사하다. 이혼이란 결과를 알고 난 후 그 사람의 지난 행동들과 말들이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그동안 모호했던 혹은 무심코 스쳤던 이상했던 일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조명하면서 그런 지난 일들이 모두 이혼이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의 이혼은 오래 전부터 예견된 결과라는 강력한 느낌이 든다. 자신만은 그 불안한 결과를 오래 전부터 막역히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이혼이란 결과가 가르쳐 준 뒤늦은 깨달음일 뿐이다.
요즘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각종 예측이 나오고 있다. 자극적인 제목부터 조심스러운 제목까지 각 유튜브들은 자신의 예견을 쏟아내고 있다. 그 수많은 지식 앞에서 그때 젊은 의사들처럼 혼란스럽고 나아가 화까지 난다. 그러나 화는 도움이 안 된다. 또다시 뒤늦은 선견지명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각자의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가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는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