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  

 

눈이 내립니다.

남의 손에 넘어간 논배미에

저물도록 펑펑 내려 쌓이고 있습니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시에서 많은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짧은 한 마디가 여운을 남기고 향기를 뿜어낼 수 있다. 마음이 고이는 법 없이 생각과 동시에 내뱉어지는 말 속에는 이런 여운과 향기가 없다. 말이 많을수록 공허함도 함께 커진다. 짧은 시의 매력은 어떠한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게 하는 데 있다. 윤효 시인의 시는 대부분 짧다. 그는 짧은 시를 통해 시의 진면목에 마주서고자 하는 시인이다. 이 시 역시 4연의 짧은 시이다. 눈이 내리는 정경 묘사도 단순하다. 다만, 2연의 "남의 손에 넘어간 논배미"와 4연의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사이에서 무수한 사건들과 감정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말을 하지 않고 말하는 수법이다. 여기서 '함박눈'은 아버지의 땀과 노력이 스며있는 것이면서, 그 땀과 노력을 배반할 수밖에 없었던 아들의 '현실적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객관상관물이다. "저물도록 펑펑 내려 쌓이"는 함박눈은 아들의 미안함과 죄책감에서 "펑펑" 쏟아내는 눈물이다. 누구나 아버지를 생각하면 각자의 이유들로 콧등이 시큰해지는 한 가지씩 감정이 있다. 그래서 이 시에서 함박눈은 겨울이면 마주하는 일상의 대상이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함과 죄송함의 감정을 소환해 내는 매개로 작용한다. 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아버지 생각이 간절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정말이지,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강동우 문학평론가·가톨릭관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