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백경 에이스트리플파트너스 대표

승리는 가장 끈기 있는 자에게 돌아간다(Victory belongs to the most persevering).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나폴레옹은 끈기를 발휘해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해전에서는 해군력이 강한 영국의 넬슨 제독에게 아부키르만에서 패했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는 여름에 출전해 겨울까지 끈기있게 공격했다. 러시아는 전술상 항복한다고 하면서 겨울이 올 때까지 끈기 있게 버텼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퇴각하는 프랑스군을 러시아 군이 역습했다.

어쩌면 퇴각하는 말 안장 위에서 나폴레옹이 "La Victorie appartient au plus perseverant"라고 말했을 것 같다. 50만명이 넘는 프랑스 군이 공격에 동원되었으나 살아서 돌아간 수는 5000명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이 전쟁에서 패하여 실각하고 엘바섬으로 유배되어 최후를 맞았다.
전쟁이든 창업이든 승리를 위해서는 변화의 임계점까지 도달하는 끈기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버틸 것인가?' 하는 전략적 선택의 문제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가' 하는 전술적 생존의 문제가 남는다. 버틸 수 있지만 더 나은 승리를 위하여 후퇴하는 것이 전략적 선택이다. 자원을 보존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지만 다시없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버티는 것으로 전략적 선택을 하더라도 식량, 무기, 전투원들의 사기 등 전술적인 요소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승리하기 어렵다. 나폴레옹이 겨울까지 버티지 않고 일찍 퇴각해 다음을 도모하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최소한 정권을 몇 년 더 연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끈기를 의미하는 단어로 GRIT란 영어단어가 있다. 용기 또는 투지로 번역된다. 미국의 심리학자 앤젤라 리 더크워스(Angela Lee Duckworth)가 개념을 확장했다. Growth(성장), Resilience(회복력), Intrinsic motivation(내적동기), Tenacity(끈기)의 의미가 GRIT에 들어있다. 성취를 위해서는 투지가 필요한데 단순한 열정이 아니라 성장에 대한 내적동기가 있어야 하고, 실패해도 쓰러지지 않는 회복력이 있어야 하며, 한가지 일에 몇 년간 집중할 수 있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 즉 평범한 지능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도 열정과 끈기로 노력하면 최고의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많은 창업가들이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작은 성공을 이뤄 나가다가 재기 불능의 큰 실패를 겪기도 하고, 작은 실패의 시행착오를 겪다가 큰 성공을 이루기도 한다. 실패에서 배우는 사람이 있고 좌절하는 사람이 있다. 성공에서 오만에 빠지는 사람이 있고 성공의 덫을 경계해서 더 큰 성공으로 연결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평생 자판기 사업을 떠나지 못했다. 투지나 끈기가 있어서 오래 버텼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개인적 취향이 제조업을 선호했고, 하다 보니 자판기 사업을 하게 됐다. 27년의 사업 중 중간의 10년은 제조업을 잠시 떠나 있었으나 다시 제조업으로 돌아갔다. 제조업으로 돌아가 10년을 버텼다.
편의점의 증가와 자판기 옥외 설치 금지로 우리나라의 자판기 사업환경은 일본과 비교하여 열악했다. 신제품 개발의 한계로 사양산업이 되어가던 자동판매기 산업이 최저임금의 급속한 상승으로 관심업종으로 바뀌었다. 인건비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많은 식당에서 식권자판기나 주문 키오스크를 도입하게 됐다. 10년 전만 해도 민간 시장에서는 잘 열리지 않던 식권자판기 시장이 최저임금의 인상이라는 정부의 정책 때문에 뜻하지 않게 열린 것이다.

시장은 이렇게 정책 입안자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예기치 않은 효과를 만들어 낸다. 터치스크린과 결합하여 더욱 편리해진 사용자 환경은 'Self-Service Kiosk'란 이름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도를 넓혀 나가고 있다.

투지와 끈기를 가지고 자판기 시장에서 버텼다면 지금의 호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는가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있기는 하다. 역경을 딛고 이룩한 성공은 역경의 과정을 미화하고 보상한다. 지금은 성공인 듯 보여도 또다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성공의 의미와 성공을 평가하는 기간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도 달라진다. 결국은 전쟁이나 창업을 왜 하는가하는 철학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