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빈 인천대 신문방송학과4학년

올해 초 알바를 하다가 겪은 일이다. 함께 일을 하던 중년의 남성 직원은 지나가던 친한 고객이 자신의 엉덩이를 살짝 치자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다 내가 미투하면 경찰서 간다." 이런 식의 장난 섞인 발언은 남자들이 모인 곳에서는 어디서든 튀어 나온다.
학교, 직장, 술자리 등은 미투가 웃음거리 되기 딱 좋은 장소다. 이처럼 미투를 조롱하는 듯한 분위기는 한국사회에 은근히 퍼져있다.

미투운동은 수백년을 지배했던 한국 사회의 불합리한 권력관계를 깬 위대한 움직임이다.
누군가의 용기 덕분에 시작된 미투운동은 여성들의 연대로 이어졌고, 서로에게 용기를 주며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미투운동이 현재 사회 곳곳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해서 전혀 무지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흑인 분장을 하고 나오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대학교 신입생 때는 MT에 가서 여성들을 흉내낸답시고 과하게 화장을 한 것도 모자라 가슴 자락에 보형물을 넣어 장기자랑을 했다. 이러한 무지함이 미투운동의 가치까지 훼손하고 있다.

언론까지 미투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언론은 불거진 연예인들의 '채무불이행' 의혹에 대해 '빚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미투운동은 연대가 필요한 사회적 운동이자 투쟁이다. 그들이 싸워야 할 것은 가해자 한 명이 아니라 그들을 '꽃뱀'이라고 손가락질하는 피해자를 탓하는 사회다. 반면 채무불이행 고발에는 사회적인 맥락이 전혀 없다. 개인의 일탈에 불과하다. 그러게 돈을 왜 빌려줬냐고 피해자를 탓하는 사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언론이 쓰고 있는 '빚투'라는 말 뒤에 사회적인 맥락을 지닌 단어인 '운동'이 붙지 않는 이유다.
그럼에도 언론은 수많은 '빚투' 기사를 내고 있다. 연예인 한 명이 채무불이행을 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빚투'가 제목에 포함된 기사들이 수 백 개씩 쏟아져 나온다.
그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신경 쓰지 않는다. 미투운동은 그들에게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고마운 상업적 수단에 불과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들은 투쟁하고 있다. 수많은 성폭행 피해자들은 가까스로 용기를 내 싸우고 있다. 그들의 투쟁이 헛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미투운동을 악용하지 않으면 된다. 남을 웃기기 위한 수단으로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말장난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