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중국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래로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깊이 개입해왔다. 1949년 11월에 설립된 중국과학원(中國科學院)은 기본적으로 자연과학 육성을 위한 것이었지만 1955년 중국과학원 안에 철학사회과학부(哲學社會科學部)가 설립됐다.
1977년에는 이것이 중국사회과학원으로 확대되면서 독립해 현재에 이른다. 중국사회과학원 안에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다양한 학문 분과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다. 각 부서에는 다수의 전문 연구자들이 소속돼 있고, 이들은 개인적인 연구 및 교육 활동을 수행하면서 국가 주도의 연구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에 들어와 중국사회과학원 내 역사학 관련 부서에서 중요한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다. 지난 1월3일 중국사회과학원은 기존의 역사 관련 연구소들을 재편하면서 이들을 총괄하는 상위 기관으로서 중국역사연구원을 설립했다. 전국의 역사 연구를 총괄하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교육하고 선전하며,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그 주요 업무이다. 산하 연구소로는 고고(考古)연구소, 고대사연구소, 근대사연구소, 세계역사연구소, 중국변강(邊疆)연구소, 역사이론연구소 등이 있다. 이전에도 중국사회과학원 내에 역사 관련 연구소들이 있었지만 이번에 이들을 개편하면서 상위 기관으로서 중국역사연구원을 별도로 설립한 것은 그만큼 역사의 연구 및 교육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더욱 체계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5월 28일 베이징에서는 중국역사연구원의 주관 아래 '제1회 전국 주요 역사 연구·교육기관 연석회의'가 개최됐다.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연석회의를 정례화함으로써 중국역사연구원을 전국 역사학자들의 교류·협력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중국역사연구원장 가오샹(高翔)은 '새로운 시대의 역사학'이 추구해야 할 목적을 설명했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봄으로써 역사의 발전법칙을 파악하고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하여 지혜를 흡수하며, 과거의 문명을 전승함으로써 미래의 길을 열어가는 것 등을 강조했다. 역사에 대한 기록과 연구가 시작된 이래로 인류가 늘 추구해왔던 목표라는 점에서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내용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목적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있다. 이와 관련해 가오샹은 다음과 같은 원칙들을 강조했다. 반드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과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의 정신'을 지도이념으로 삼을 것, '시진핑 총서기의 중국역사연구원 설립 축하 서신의 정신'을 준수할 것, '시진핑 총서기의 역사 관련 주요 저술의 정신'을 이론적 기초로 삼을 것 등등. 2017년의 19차 당대회에서 제기된 이른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역사 연구 및 교육의 원칙으로 삼으라는 이야기이다. 시진핑 집권 2기로 진입하면서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에 대한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역사 연구 및 교육에서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중국의 역사학은 1949년 이후로 오랜 기간 정체 또는 퇴보해왔다. 극소수의 예외적인 연구 성과를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개입과 통제 아래 역사학의 학문적 성과는 매우 빈약했다.
중국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압도적인 수량에도 불구하고 참고할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에 학문 분야에 대한 통제가 '다소' 완화되고, 달라진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은 연구자들이 중견 연구자로 성장하면서 지난 20여 년 사이에는 훌륭한 연구 성과들이 다수 발표됐다. 중국의 역사학자들이 과거에는 정치적 제약으로 인하여 자국사 연구자로서의 이점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이를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전면에 내세우는 '신시대 역사학'은 그동안 힘겹게 쌓아 올린 중국 역사학의 성취를 갉아먹을 위험이 크다. 중국역사연구원이 추구하는 '새로운 시대의 역사학'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사실상 과거로의 회귀일 뿐이다. 필자 역시 중국사를 전공하는 한 연구자로서 중국역사연구원의 이러한 시도가 단순한 수사에 그치기를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