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철 금정굴 인권평화연구소장
▲ 신기철(56) 금정굴인권평화연구소장.

"국가는 국민을 믿지 않았다"

신기철(56) 금정굴 인권평화연구소장은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를 이같이 정의했다.

신 소장은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2004년)'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2006~2010년)'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금정굴인권평화재단'에서 한국전쟁 당시 희생당한 민간인들의 진실규명을 위해 일하고 있다.

"전란 중에 국가는 국민을 믿지 않았어요. 적국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의심만으로도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이 조사를 통해 드러난 거예요. 국군 전사자보다 민간인 희생자가 더 많은 사실이 하나의 방증이죠. 국가가 누구와 전쟁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예요."

실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를 보면 한국전쟁에서 숨진 국군은 모두 13만여 명이다. 반면 민간인 희생자는 24만여 명에 달한다. 학계에서는 민간인 희생자가 최소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 소장은 국가가 조장한 학살로 무참히 파괴된 지역공동체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부역자 색출작업에 동원한 사람이 같은 동네주민을 붙잡고, 학살까지 했어요. 서로 형님, 아우하며 지낸 이웃이 한순간 철천지원수가 된 거예요. 평생 회복하기 힘들 거예요. 아니 불가능하다는게 맞겠죠."

이런 사실을 국가가 수십 년간 숨겨온 사실에 신소장은 분노했다.

"그 동안 국가는 국군이 입은 피해나 인민군에 의한 집단학살 같은 정권 유지에 유리한 사실만 부각했어요. 국가가 저지른 학살은 입에 담는 것도 금기시 했지. 아직도 초·중·고 교과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아요."

희생자 진실규명 등 후속조치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희생자가 지금도 차가운 땅속에 묻혀 있어요. 발굴된 유골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죠. 희생자들의 비통함을 풀 수 있도록 하루빨리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해요."

희생자들의 비통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사재단 설립이 시급하다고 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한 조사를 과거사 재단이 이어서 하기로 했는데..설립이 백지화됐어요. 정권이 바뀐 거죠. 지금이라도 빨리 재단을 설립해, 이 불편하고 아픈 사실을 역사화 시키는 게 필요해요. 희생자들은 여전히 좌익이예요. 죽을만한 사람이었다는 논리는 지금도 여전해요. 아마 국가가 인정하면 한국 전쟁사가 다 바뀔 거예요."

/글 사진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