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도우며 아픈 역사 함께했던 '소녀'
▲ 6·25전쟁 당시 기억을 회상하고 있는 이진선 할머니.

황해도 출신 16살때 피난
정보전달·간호활동 펼쳐
"전사한 오빠 다시 보고파"




한국 역사에서 아픈 기억 6·25전쟁.
그 현장에 군인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군인을 도우며 일반인 신분으로 전쟁에 참전한 사람들도 있다. 세월이 지나 그들의 흔적은 지워졌지만, 기억 속에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진선(82) 어르신은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1년 유격군에 합류했다. 그는 황해도 장영군 출신으로 16살 나이에 남한으로 피난 왔다. 이후 서해안 도서·해안 지역에서 유격 활동을 전개했다.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몰라요. 혹여 들킬까 봐 산으로 숨고, 소리가 들릴까 숨을 참았어요. 그렇게 산등성을 수차례 넘어서 남한으로 오는 배를 탔어요. 이러다 굶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남한 땅을 밟았죠."

이 어르신이 처음으로 발을 디딘 남한 땅은 인천 옹진군 대청도다. 군사기지와 민가가 함께 있었던 대청도에서 그는 자연스레 군인들의 심부름을 시작했다. 어린 나이의 여성이었던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한정적이었다. 주민들이 갖고 있는 정보를 수집해 국군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주로 하곤 했다. 군인들은 그 정보를 토대로 전투에 나섰다.

"그 상황이었으면 누구나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적었던 게 아쉬웠어요. 집안 남성들은 직접 전쟁에 참여했지만, 저는 그들을 돕는 일밖에 못했으니까요."

간호 활동도 펼쳤다. 백령도 군 병원에서 군인들에게 주사를 놓고, 붕대를 감았다. 간단한 치료법을 배워 의료진을 도왔다.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고 하면 백령도에서 간호활동을 했을 때입니다. 다쳐서 오는 군인들을 보면, 전쟁에 참여한 오빠 생각이 났어요. 전우를 두고 왔다고 오열하던 사람들이 아직도 아른거려요."

이 어르신의 오빠는 전쟁 초반에 먼저 피난을 왔다. 남한으로 와서 한국군에 합류한 이 어르신의 오빠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는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오빠를 기다리고 있다.

"해마다 유해 발굴 소식이 들려오면 오빠 유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유전자 감식을 의뢰하러 다니곤 해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저의 마지막 소원은 오빠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겁니다."

/글·사진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