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론] 대북 인도적 지원과 인천
[시 론] 대북 인도적 지원과 인천
  • 인천일보
  • 승인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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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전쟁 발발 45년째였던 1995년 6월25일 오후 5시. 당시 이홍구 국무총리는 "국민의 따뜻한 동포애를 북녘으로 전하는 첫 항해가 개시됐다"고 선언했다. 그는 태극기를 단 우리 배가 쌀 1차분 2000t을 싣고 북한으로 향하기에 앞서 "남과 북은 이제 화해와 협력의 바탕 위에서 공동발전을 도모하고 민족복리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배는 강원도 동해항에서 출발하여 24시간 만에 북한의 청진항 외항에 도착하여 바지선으로 쌀을 내려주었다. 남북이 서로 15만t, 당시 우리 돈으로 약 2000억원 가량의 쌀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합의했던 결과다.

북한에는 1994년부터 흉년이 시작되었는데 1990년대 중반에 수해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식량난에 빠졌다. 북한은 이때를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르는데 대략 1996년부터 2000년 사이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사회주의권의 후원이 줄어든 뒤라 북한의 고난의 행군은 더욱 처절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북한에서는 수도 없이 굶어죽었다는 말이 있다. 북한은 그 시절에 한국도 도와줬는데 중국이 그냥 모른체하고 넘어갔다고 분개하고 있다.


뱃길은 처음 열리기가 어렵지 한번 열린 뒤에는 다시 배가 오가는 것은 쉽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가 공교롭게 1997년 금융위기와 겹쳤는데 우리가 점차 경제난에서 벗어났고 남북 사이의 평화적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는 정부가 이어졌다.
우리 정부는 2002년부터 2007년 사이에 해마다 약 10만t에서 40만t 정도의 쌀을 북한에 보냈다. 그 뒤 우리 정부가 북한에 쌀을 지원한 것은 2010년인데 당시 5천t을 보내고 끝났다.

그간 우리 정부가 쌀을 북한에 보내는 것은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아무리 우리 정부가 인도적인 지원을 해도 정작 필요한 사람은 못 받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더 큰 의심은 혹시라도 군량미로 쓰이고 비축될 가능성으로 향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남아도는 쌀을 오래 보관하는데 비용을 쓰느니 같은 민족을 돕는데 쓰는 게 장기적으로 좋은 결실을 낳게 마련이다. 또한 대한민국이라고 찍힌 쌀 포장이 북한 전역으로 유통되고 군량미로 쓰이지 않도록 관리하고 감시한다면 우려는 줄고 효과는 커질 수 있다.
2017년부터 유엔의 대북제재와 미국의 독자적 제재가 강화되면서 북한의 경제는 다시 한 번 고난의 행군에 유사한 상황에 빠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무역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던 중국과의 교역이 거의 막히면서 곧 북한에 대한 제재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물론 북한의 경제가 개인이 의무적으로 국가에 내야 하는 할당량을 제외하고 남는 것을 임의로 처분할 수 있도록 바뀌면서 생산성도 전에 없이 높아졌고, 시장경제인 장마당도 활성화되면서 고난의 행군에도 견딜 수 있다는 진단도 없지 않다.
그러나 북한은 식량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고 세계식량계획(WFP)도 북한의 식량사정이 최근 10년 사이 최악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북한에 다시 한 번 쌀 5만t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하여 하노이에서 열렸던 북미정상회담 이후 답보 상황을 거듭하고 있는 남북관계에 조금이나마 전기를 마련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을 것이다. 이번에 쌀 5만t은 국내산으로 약 1270억원 정도이다.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정부가 직접 북한에 쌀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세계식량계획을 통하기로 했다. 국제기구가 우리 항구에서 운송부터 북한에서 분배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직접 살피기로 했다.
모든 쌀 포장에는 대한민국이라고 표시되고 쌀도 최장 6개월 정도만 보관하도록 도정을 거칠 것이다. 북한에 쌀을 지원하면서 의심을 피할 장치를 최대한 만든 셈이다. 일단 우리 정부는 이번 쌀 지원을 9월까지 마무리하되 결과를 보고 추가 지원 등을 결정할 것이다.
이번에 조사해보니 인도적 쌀 지원은 북한부터 시작했다. 1984년 9월29일부터 10월4일 사이 이미 북한이 우리의 홍수 피해를 복구하라고 인천은 물론 판문점으로 물품을 보냈던 적이 있다. 이때 북한은 쌀 7196.7t을 포함해 천, 약품, 시멘트 등을 보내왔다. 특히 시멘트를 싣고 오던 북한의 배가 북한해역에서 좌초했는데 이를 다른 배 두 척에 옮겨서 보냈다. 쌀을 실은 배는 1995년에 동해항에서 출발했는데 2000년대에는 인천을 포함하여 6개항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번에도 이왕이면 인천에서도 쌀을 실은 배가 출발하기를 기대해본다. 이렇게 주고받다 보면 훨씬 더 좋은 일이 생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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