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호 인하대 의대 내과 교수


어제는 6·25전쟁 기념일이었다. 69년 전, 전쟁으로 초토화돼 세계 21개국의 파병과 민간 지원 그리고 41개국의 식량과 물자를 받았던 우리나라가 지금은 반대로 해외를 원조하고 분쟁 지역에 한국군을 파견하고 있다. 오늘은 지구 반대편 레바논에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UNIFIL)으로 파견되어 있는 동(東)쪽에서 온 빛(明)이란 이름의 동명부대 330명의 한국 군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난 연말 인하대병원은 대한항공을 통해 동명부대로부터 의료지원 요청을 받았다. 현지 군의관들이 해결하기 어렵고, 위험한 지역이라는 인식으로 국내 대학병원들도 도움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지 환자에 대해 부대가 고민하던 차에, 그 사정을 들은 대한항공에서 발 벗고 나선 결과이다.
동명부대가 파견된 것은 2006년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과 레바논 수니파 헤즈볼라 간 군사 무력 충돌이 일어나 1000여명이 사망하게 된 2차 레바논 내전이 계기다. 유엔은 회원국 참여를 촉구했고, 노무현 정부가 국회 동의를 얻어 국제 사회에 동참하기로 했다. 2007년 결성된 동명부대는 그 해 7월, 1진을 시작으로 8개월 마다 교대 근무를 해왔다.

지난달 인하대병원 의료진이 방문했을 때는 얼마전 인천 계양구 국제평화지원단에서 출발한 22진이 도착해 인수인계를 마친 후였다.
동명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레바논 남부 티르 지역은 성경에도 '두로'라는 이름으로 언급되는 고도(古都)이다. 알파벳를 발명한 페니키아인이 기원전 2700년 전에 세운 무역도시로 한때 카르타고를 식민지로 두었을 정도로 강력한 도시였다. 그런 곳이 지금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접경한 군사지역이 돼버렸다.

동명부대는 이곳에서 지역 내 감시정찰을 하루 8회 수행하면서 대민활동도 함께 한다. 부대장 주선으로 UNIFIL 서부여단을 방문했는데, 여단장 아바그나라(Abagnara) 사령관은 동명부대는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유일한 부대라며 다른 부대들의 롤 모델이라고 일러주었다.
제21진부터 동명부대를 지휘해 온 구석모 대령은 6·25전쟁 때 레바논이 우리나라에 5만달러 물자 지원을 했던 사실을 강조했다. 레바논 주민들은 '우리는 도우려 온 것이 아니라 갚으러 온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마음을 연다고 했다.
동명부대는 주둔 지역 내에 태권도 교실을 운영하여 베이루트에서 독립한 사범도 배출했고, 재봉교실을 통해 현지 여성들의 자립에 도움을 주고 있다. 부대 의료진은 틈틈이 지역을 순회하면서 현지인들을 진료하고 응급 환자들도 24시간 돌봐 주고 있다. 우리 의료진이 진료를 하는 날에도 복도 건너편에서는 수의장교 류미선 중위가 주민들이 데려온 동물들을 돌보고 있었다. 티르 주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교 중 하나로 보였다. 시내에 '코리안 로드'라 불리는 도로가 있는데 부대에서 태양열 가로등을 세워줘서 현지인들이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현재 해외 파병 한국군으로는 동명부대 외에 소말리아 청해부대, 남수단 한빛부대, 아랍에미리트의 아크부대가 있다. 혹자는 돈까지 들여서 위험하게 왜 우리나라 군인을 해외에 파병해야 하느냐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전 후 최근까지 200억달러의 국제 원조를 받았다. 2차 대전 후 마샬플랜으로 유럽 총 18개국에 지원된 130억달러를 훌쩍 넘는 금액이다.

우리는 해외원조 수원국(受援國) 출신 국가로, OECD에 가입하고 원조 공여국(供與國)으로 공식 지위가 반전된 유일한 나라이다. 우리도 훌륭했지만 국제 사회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돈까지 들여서 왜 남의 나라에'라고 말할 입장이 아닌 듯하다.
우연인지 요즘은 해외의료봉사를 나가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 지역과 겹치는 곳이 많다. 중국은 7~8년 전부터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해외 원조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앙 유라시아에서 멀리 아프리카까지 막대한 자금과 인프라 지원을 투입하고 있다. 의도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중국이 두려운 점은 중국 정부나 지도자들이 내다보는 사고나 전략의 범위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미국에 버금가게 원대하다는 점이다. 그에 비해 우리의 시야는 작은 반도, 사실상 섬이나 다름없는 국내에 붙들려 있다.
다른 나라에서 주둔지의 안전을 지키고 현지인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는 해외 파병 부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다. 국제사회에 대한 보답의 의미도 있지만 이들의 경험을 통해 세계를 보는 시야가 넓고 길어진다.

방문 기간 의료진을 호위해 준 김상우 소령은 인천에서의 22진 환송식 때 아이들과 찍은 사진이 인천일보에 실렸다고 자랑하면서(4월16일자 19면), 동명부대 장병들은 해외 경험과 국제적 안목을 갖고자 하는 진취적인 동기로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재원들이라 귀국 후에도 여러 분야에서 우리 나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이 끝난 69년 후 우리나라가 이런 희망적 모습을 가질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