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도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곳으로

 

▲ 책쉼터에서 열린 최종규 작가의 사진책 전시.


오늘의 일기예보를 보니 낮 기온이 최고 31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배다리에 살면서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게 날씨이다. 배다리에 있는 공간들이 대부분 낡고 오래되어서 한겨울 나기와 한여름을 보내기에는 많이 힘들다. 겨울 난방을 위해 아직도 화목난로, 연탄난로와 석유난로를 쓰는 곳이 많으며, 여름에는 전기료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에어컨 대신에 선풍기 몇 대로 한 여름을 나고 있다.

특히, 상업공간은 손님이 드나드는 곳이라 혼자만이 환경을 생각하고 가치를 지키며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 어려워서 절약하고 아끼다보니 손님은 쾌적한 공간을 찾아가고 결국은 운영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악순환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이제 시작되는 여름 무더위에 올 여름을 어떻게 날 수 있을까 고민부터 든다. 주말 내내 더위로 인하여 배다리를 찾는 손님들이 드물어졌다. 시원하고 넓은 카페엔 사람들이 넘쳐흐른다.

요일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필자도 한 여름, 한 겨울엔 공간을 닫는다. 배다리를 찾는 손님들과 주민들이 계절에 상관없이 여유롭고 편하게 누릴 수 있는 공유 공간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순전히 날씨 탓이다.

이번 '배다리, 책피움 한마당' 책 잔치의 한 꼭지로 최종규 작가의 사진책 전시가 조그맣게 열렸다. 최종규 작가는 배다리에서 오래전 사진책 도서관을 꾸렸다가 현재는 전라도 고흥 폐교에서 사진책 도서관을 이어가고 있다. 전시 사진은 1999~2019년까지 배다리 책방골목을 찍은 사진들이다. 20여년 동안 배다리 책방들의 모습을 담아왔는데, 지금은 없어진 창영서점, 국제서점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전 책방지기였던 삼성서림, 집현전, 대창서림 사장님들을 담은 사진을 볼 수 있었다. 20년 동안 꾸준히 배다리 책방들을 담아온 방대한 사진 자료들을 갖고 있는데 이번 전시에는 12쪽짜리 사진 책을 20권으로 준비하여 책쉼터에서 느긋이 앉아 볼 수 있게 준비되었다. 배다리 책방뿐만 아니라, 전국의 책방들을 찾아다니며 스스로 담아낸 사진들은 그 양이 엄청나다.

최종규 작가는 '사진 찍기 좋은 곳'이 아니라 '책을 읽기 좋은 곳'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맘으로 책방이야기를 사진에 담고 있으며, 앞으로도 기꺼운 걸음으로 배다리 책마을의 오늘을 잘 담아낼 것이다.
전시기간에만 짧게 볼 수 있었던 게 많이 아쉬웠다. 이 사진들을 배다리에서 상시 볼 수 있는 공간이 꾸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책방거리에 비어 있는 건물들을 잘 살려내 이제는 마을에 이런 뜻있는 작은 도서관 하나 정도는 들어서도 좋지 않을까 한다.

며칠 전, 마을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문 건축 프로그램에서 43년째 '박의상실'을 운영하고 있는 박태순님이 마을살이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 말씀 속에 지금은 사라진 광성서점, 동산서점, 인창서점, 정명서점, 고려서점, 평화서점, 창영서점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책방이야기가 사진 책을 보며 술술 이어진다.

마을에 사진책 도서관,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보며 머무를 수 있는 이야기 도서관이 책방과 어우러져 들어선다면 어떨까? 꾸려진 마을 도서관에서 오래된 사진들을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어른들, 책방지기가 들려주고 싶은 책을 들고 아이들을 찾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마당을 펼쳐봐도 좋겠다.

주민들과 책방을 찾는 손님들의 집에 넘치는 책들로 꾸며진 책장을 공유하여 운영되는 마을서재 같은 도서관이면 더 좋겠다. 집에 책이 쌓이는 게 무서워 책 사기를 꺼려하거나, 어떤 가정에서는 책을 사들이는 옆지기 때문에 부부싸움까지 한다고 한다. 마을서재의 공유책장을 잘 활용하면 더 이상 가정에서 책과 씨름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배다리 책방에 아이와 부모가 책 나들이 와서 이야기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갖고 싶은 책이 생기면 쪼르르 책방에서 책을 사서 볼 수도 있겠다. 사진책 도서관이나, 이야기 도서관은 헌책방과 동네책방에서 정기적으로 책을 구입하는 협업의 관계를 가지면 될 것이다. 사진책 도서관, 어린이책 도서관, 동네서재 등 …

어제와 오늘이 함께 공존하는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꾸려가는 도서관을 꿈꿔본다. 함께 누릴 수 있는 배다리마을이기에 꿀 수 있는 꿈인 것이다.

/권은숙 생활문화공간 달이네 대표·요일가게·나비날다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