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 각색극 '낡은사람' 재연
세대 갈등이란 무거운 주제에도
내용과 상관없이 관객들 매료
▲ 연극 '낡은 사람' 공연 모습. /사진제공=극단 아토

초연의 설렘보다 재연의 농익음에 기대가 컸다. 한~걸음 내딛기보다는 한발씩 꾸준히 걷는 게 더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무대일 것이라 여겨졌다. 극단 아토는 홀로 앞서가기보단 함께 걷는 여유와 모두를 품을 넓은 가슴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3년 전 대학로에서 초연된 '리퍼블릭 리어'가 '낡은 사람'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는 소식에 반가웠다. 더구나 인천에서 연극을 한다는 버거운 행위를 5년이나 해냈던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연극 '낡은 사람'은 세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을 원작으로 한다. 효심 고백 대결로 왕국을 나눠주고 편한 여생을 기대한 리어왕이 자식의 배신에 실성해 광야를 헤맨다는 이 이야기는 개인과 가정, 국가, 자연은 물론 세대 간의 갈등까지 논하고 있다.

익히 알려진 원작을 각색해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극단과 배우, 관객 모두에게 도전이다. 그렇기에 2016년 초연된 작품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초연의 감동이 여운으로 남았다는 반증일 터.

극의 시작, 리어왕의 대사는 엄중하다. 그는 훈민정음 서문을 빗대 백성을 위한다며 리퍼블릭(공화제)을 선포하고, 국민을 위한 공약을 약속한 두 딸(거너릴, 리건)에게 왕국을 나눠준다. 뱀의 혀가 되는 것을 포기한 코델은 리어왕에게 쫓겨난다.

리퍼블릭은 '국민'에, '국민'을 위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진리 앞에 위태롭게 서 있고, 위정자들은 한결같이 "하고 싶다. 할 거다. 그러나 준비가 덜 됐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뱉어댄다. 이 세태를 고스란히 거너릴과 리건의 독이 찬 대사를 통해 전해들을 수 있다니.

이 공연은 공화제와 세대 갈등이란 묵직한 울림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리어왕) 시녀 100명 때문에 새 정치를 할 수 없다는 두 딸의 저항은 삐걱일 수밖에 없는 세대 간 이해불균형을 얘기한다.

둔탁한 둔기처럼 리어왕을 맡은 박경근은 선 굵은 몸짓과 대사로 객석을 휘어잡았고, 마임의 대가 이경열이 광대로 분해 극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됐다. 거너릴 김유미, 리건 장윤형, 코델 최우성을 통해 백분 극의 의미가 전달됐고, 코러스와 시민을 연기한 윤원기, 김진경, 정진화, 강원철, 서소의가 극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연극이 끝나고 공동연출을 맡은 이화정 극단 아토 대표가 걱정스런 말투로 "극이 좀 무겁다"고 말한다. 그러나 튼실한 연극인이 수놓은 무대는 내용의 경중에 상관없이 관객을 매료시킨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