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전을 피해 작년 6월에 한국을 찾은 예멘 난민 압둘라(24)씨가 18일 오전 수원시 팔달구의 한 케밥집에서 본지와의 인터뷰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쓰레기장 한켠 컨테이너 거주

임금 체불·끼니 걱정 … 쉼터로


일자리 없으면 비자갱신 안 돼

돌아가게 된다면 … '죽음' 암시


고향 포격에 지붕 없는 곳 살아

아이들 강제로 군대에 잡혀가



'쓰레기장 한켠에 세워진 컨테이너 박스에서 세달을 살았다. 회사를 다녔지만 월급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결국 식비가 떨어져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 ▶관련기사 3면
올해 5월 수원에 온 예멘 난민이야기다.

18일 수원에서 만난 히샴씨와 아셀씨 손에는 임금체불 진정서가 들려져 있었다.

"3달여 간 일했지만, 처음 일주일 일한 돈 빼고는 받은 돈이 없어요. 달걀과 우유를 사먹다 식비가 떨어져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이제 다시 일자리 고민을 시작해야 해요"고 말했다.

히샴씨는 지난 2017년 18살의 나이에 예멘을 떠나 한국으로 왔다. 내전이 심해지면서 학교가 문을 닫았고, 아는 사람들이 군대와 반군에 징집됐다. 그는 걸어서 오만으로 넘어갔고, 그로부터 다시 1만여㎞의 긴 여정 끝에 한국에 도착했다.

아셀씨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그도 학교가 문을 닫으며 일자리를 잃었다. 기본적인 생계마저 끊기면서 결국 고향을 떠나 말레이시아로, 다시 제주도로 왔다.

이들은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아 한국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난민인정을 받지 못해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언제 비자 연장이 끊길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속에 일용직으로 일하며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시민단체의 소개로 지난 3월 숙식을 제공하는 전라도의 한 공장에 취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장에서 그들을 기다린 것은 쓰레기장 옆에 세워진 빨간 컨테이너 박스였다.

"누우면 쓰레기 냄새가 올라와요. 에어컨도 없고, 가스도 끊겼어요. 회사에 가스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가스비를 내야 한다는 말뿐이었어요"

히샴씨는 "화장실도 없어 소변을 페트병에 모아 버려야 했어요"라고 말한다.

그동안은 달걀과 우유로 끼니를 때웠다. 숙소의 가스가 끊기면서 그나마 끼니도 이어갈 수 없는 지경이다. 회사측은 구내식당을 이용하지 않는 대신 식비 20만원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마저도 지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3달여 간 일했지만 회사는 임금을 주지 않았고, 결국 식비마저 떨어지면서 일을 그만 두고 난민지원시민단체가 마련해 준 난민쉼터로 돌아왔다.

이들에게 일자리보다 절박한 문제는 없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비자 갱신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없으면 비자 갱신이 어렵고, 비자 갱신이 안되면 예멘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러면 …" 히샴씨는 죽음을 암시하듯 손으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압둘라는 이들에 비해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다. 압둘라는 난민지원시민단체가 이들을 고용하기 위해 운영하는 수원 YD케밥집에서 일하고 있다. 압둘라도 벌써 4번이나 일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제주도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그는 제주에서 고기잡이배를 탔고, 인천에서 시멘트 공장에서 포대를 날랐어요. 화성에서는 제과 공장에서 반죽을 빚었고, 강원도 원주에서는 김치 공장을 다녔어요. 한 달짜리 단기계약과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근무환경은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하고 싶은 요리를 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압둘라의 말이다.

"제 꿈은 이미 부서졌어요, 지금 예멘에 있는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먹을 게 없고, (포격에) 지붕이 없는 곳에서 살고 있어요. 아이들이 강제로 군대에 잡혀가고 있어요.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싶어요. 한국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히샴씨의 슬픈고백이다.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