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가족과 친구들 위한 선택"
▲ 6·25전쟁 인천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던 이경종 옹이 전쟁 당시 군복을 입고 찍은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16살에 학도병 … 기록 수집 중
개인묘 묻힌 2명 '국립묘 이동'
'인천학생 6·25 참전관' 설립도



힘들었던 한 때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떠올리기 싫은, 떠올리기 힘든 기억도 있다.

6·25전쟁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이경종(85) 옹이 겪은 전쟁의 참상이 그런 기억이다. 이 옹은 6·25전쟁 당시를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며 "생각도 하기 싫다"고 몸서리 쳤다.

전쟁이 날 당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이었던 만 16세 소년이었던 이 옹은 이듬해 1951년 1월, 중공군 개입에 따른 1·4후퇴 당시 나라를 지키겠다며 형과 함께 학도의용군에 들어갔다. 부산에 있던 육군 제2훈련소에 입소해 교육을 받은 그는 이후 수도사단공병대에 배치를 받고 강원도 속초 일선 전쟁터에서 목숨을 건 싸움을 펼쳤다.

"전쟁터에서 동료가 죽으면 시체를 업고 이동했어요. 전쟁이 있던 한 날도 동료 시체를 업고 산에서 내려오다가 그만 거꾸로 굴러서 시체와 같이 아래로 처박혀버린 적이 있어요. 그 때 허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지금 제가 허리가 많이 안 좋은데 그 때 일 때문이에요."

휴전 후에도 집으로 바로 돌아오지 못했다. 휴전 후 그는 강원도 화천 26사단 공병대에 소속돼 만 20세가 되던 1954년 12월 인천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싸운 인천 학도병들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40년이 지난 1996년 무렵부터 이 옹은 친구이자 전우였던 인천 학도병들에 대한 기록을 모으기 시작했다.

"학도병 기록을 찾다보니까 전사자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전쟁 중 전사하면 다 국립묘지로 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었고 이들에 대한 기록을 제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확고히 하게 됐습니다. 이런 노력 덕에 개인묘에 묻혀 있던 해병과 육군 전사자 두 명을 국립묘지로 옮길 수도 있었습니다."

결국 이 옹은 2004년 가족의 도움으로 '인천학생 6·25참전관'을 설립해 박물관으로 위상을 높였다. 몸이 불편해 오래 걷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이 옹은 매일 저녁 참전관에 들르는 일을 빼놓지 않는다.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참혹한 기억. 하지만 그는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 말한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나라를 위한다기보다 내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선택이었죠. 6·25 전쟁은 의좋던 형제 중 한 명이 욕심을 부려 생긴 일입니다. 잊으면 안됩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비극이 다시 없으려면…."

/글·사진 이창욱 기자 chuk@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