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멀리서 들려온다. 나는 습관적으로 관장실의 창문을 프레임 삼아 카메라 셔터 누를 준비를 한다. "하나, 둘, 셋" 마음 속 숫자 소리에 맞춰 여지없이 아이들의 모습이 렌즈 속으로 빨려들어 온다. 언제나 그 배경에 커다란 범종 3구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이 종들은 중국 산(産)이다. 인천시립박물관에 오게 된 사연이 참 기구하다. 1937년 일제는 중국을 침략한 후 동남아 쪽으로 전선을 확장했다. 일본 군부는 전쟁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금속류 공출령을 공표했다. 가정에서 쓰는 놋그릇, 숟가락 심지어 요강 까지 싹쓸이로 거둬들였다. 일제는 일본열도와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대륙과 대만에 이르기까지 강제로 쇠붙이를 모았다. 이때 중국 하남성 사찰 경내에 있던 범종들을 약탈한 후 선박을 이용해 인천항으로 옮긴 후 육군조병창(부평)으로 실어 날랐다. 덩치 큰 사찰의 종은 최고의 공출품이었다. 바다를 건너 온 중국 범종은 용광로 속 쇳물이 되기 일보직전 일본의 패망으로 겨우 '목숨'을 보전했다.

광복 후 인천시립박물관 건립을 준비하던 초대 관장 고(故) 이경성 선생은 조병창으로 갔다. 그곳에는 가까스로 용광로행을 면한 금속품들이 마당과 창고에 잔뜩 쌓여 있었다. 눈에 띄는 몇 점을 골라 미군 트럭에 싣고 왔다. 그때 중국 범종 3구는 시립박물관의 유물이 되었다.
얼마 전 이들 중국 철제범종들은 오랜만에 때 빼고 광냈다. 열흘 간 표면클리닝, 부식억제, 보호코팅 등 정기적인 보존처리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 중국 종들은 이제 더 이상 울리지 않지만 오늘도 박물관을 찾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외할아버지처럼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묵묵히 듣고 있다.

/인천시립박물관장